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에서 전재 (김선우,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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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뜨거운 몸
김미경
뜨거운 기운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래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가까이 있으면 옆 사람도 덩달아 신나는 일이 벌어지는 긍정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삶의 에너지가 떨어질 때면 가까운 재래시장으로 가보시라. 시끌벅적한 시장소리와 사람냄새가 훅 끼쳐오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하루 내내 무료함이 밀려오거든 집 가까이 산책을 해보시라. 눈여겨보면 장소 어디를 불문하고 뿌리내려 꽃 피우는, 자잘한 꽃을 온몸에 다닥다닥 붙이고 외따로이 핀 야생화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꽃 피우는 야생화의 이름을 찾아 불러주어라, 이름을 부르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몸 중에서도 아픈 부분, 약한 부분, 못난 부분에 애정을 갖고 세상에 드러내 보아라. 참 잘했다는 자신감으로 가슴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난 이렇게 뜨거운 마음이 식지 않도록 자동차 계기판을 확인하듯 수시로 마음을 점검한다.
요즘, 마음이 뜨거워지는 방법을 한 가지 더 보탰다. 책을 읽는 순간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을 따로 적어 두어 수시로 암송하는 것이다. 다시 암송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면 온몸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다. 이 방법은 가장 손쉽게 에너지를 채우는 나만의 방법이다. 우리의 몸은 항상 뜨겁다. 다만 잠들어 있을 뿐이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일깨워 보시라. 보잘 것 없고 작고 약한 곳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 저절로 몸은 뜨거워지면서 스스로 잠든 나를 깨울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얼마나 에너지 넘치는 말인가. 그저 무의미하게 소중한 하루를 식은 채로 잠들지 마시라. 그 불씨마저 꺼져 버리는 낭패가 일어날 수 있다. 내 몸속의 잠든 것이 무엇인지 하루빨리 깨워 보시라. 얼른 깨워 뜨거운 삶 누려 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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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선우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세 권의 시집을 냈고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칼럼집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어른을 위한 동화 『바리공주』 등이 있다.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2007년 제9회 천상병시상을 수상했으며 ,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문화웹진 ‘나비’에 장편소설 『캔들 플라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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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미경
경남 김해시 동상동 동장으로 근무 중인 공무원이다. 동상동은 김해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재래시장이 있는 곳이다. 우후죽순 생긴 대형마트로 인해 재래시장이 겪는 어려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삶의 현장인 시장 사람들과 부대끼며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시로 적어 올해는 시인으로 등단(<시와시학>)하기도 했다. 하루빨리 재래시장이 문화와 전통이 어우러지는 시장으로 거듭 발전하기 위하여 시장 사람들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