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지
김중식
대륙 대척지의 잎새가 지면
아픔의 마을은 초여름인데도
마을 대표 씨름 선수의 입술이 튼다
낙엽이 뒹굴면 채식주의자가 복통으로 뒹군다
아픈 일엔 모두가 상처받아서
개도 눈물을 흘리고
아픔을 신호 보내는 한 물건도 없지만
해가 뜨면 마르는 이슬을 가여워해
새벽부터 상처받는다
상처받지 않는 때와 곳이 없다
옆고을 오일장에 갔다가 국밥 한 그릇에 팔천원의 바가지를 써도
항의 않고 상처만 받아서
가슴을 쓸며 가만가만 오는 마을
지은 죄 없어도 죄 지은 자에 돌을 안 던지는 이유는
날으는 돌이 차마 아파하기 때문일 것
통증은 없는데 병이 재발했는지
아픈 설사가 새면
폭포수도 가뭄 드는
작은 마을
『황금빛 모서리』에서 전재 (김중식, 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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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지금은, 아픔의 작은 마을이 그리울 때
인진혜
먹고 살아야겠다고, 먹고 살기 위해 일터에 남아야겠다고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쳐지던 저 방망이는 얼마나 아팠을까. 공(公)도 못되고 권력(權力)은 더더욱 못 되는, 칙칙한 제복 속의 고된 일상을 향해 날아가던 증오 담긴 그 화염병은 얼마나 쓰라렸을까. 모래바람 사이로 가볍게 부서지며 번져가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위로 하릴없이 떨어지던 그 폭탄은 얼마나 중력을 거스르고 싶었을까. 굶주림으로 파닥거리는 저 아슬아슬한 수많은 목숨들을 두고 검푸른 바닷물 속으로 삼켜지던 곡식들은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한 손에는 콜라, 한 손에는 햄버거를 든, 형편없이 시들어버린 뿌연 얼굴의 아이들을 태우고 새벽 골목길을 돌아야 하는 저 학원 버스는 얼마나 움직이기 싫었을까.
장 지글러라는 아저씨는 “다른 이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 그런가, 인간이 다른 생명의 아픔을 아파할 능력이 있기는 한 건가, 인간만, 유일하게 인간만, 도처에 가득한 아픔과 신음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닌가, 막막하고 무서워질 때면, 김중식의 아픔의 작은 마을로 숨어들어 간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씨름 선수들같이 건장한 사내들이 어떻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구 반대편의 잎새 때문에 입술이 틀 정도로 아파할 수 있느냐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새벽이슬의 사라짐이 그토록 아파서야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고, 지은 죄 많아도 더 큰 죄 지은 자 향해 과감하게 돌 던져야 세상에 정의가 오는 게 아니냐고, 괜스레 화풀이하듯 시비 거는 나에게 아픔의 작은 마을 사람들 이렇게 말해준다. 우리가 아프다는 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라고. 우리가, 사람과 자연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라고, 함께 살아간다는 건 좋은 거라고. 그러니까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 아픔은 따뜻하고 아늑한 아픔이라고.
아픈 마음 아픔으로 쓰다듬어주는, 내 작은 詩의 마을, 나의 망명지. 지금은, 아픔의 작은 마을이 그리운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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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중식
1990년 1월 <문학사상>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직장 없이 사는 게 꿈’이기도 해서 자의반타의반으로 2년여 동안 무직자로 생존했다. 간간히 출판사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모아 인도 등지를 배낭여행하고 절이나 선배의 집에서 기생하기도 했다. 1992년 “은행원이 돈 세듯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격주간 출판전문지인 <출판저널>에 취직했지만 석 달 만에 “은행원이 돈 센다고 그 돈이 은행원 돈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1995년 <경향신문>에 입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휴간일(休刊日)이 휴간일(休肝日)’인 생활을 하였으므로 서울의 밤에 관해서라면 따로 취재를 하지 않고도 쓸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져 『서울의 밤문화』를 집필하게 됐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199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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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인진혜
지극히 모범생적인 외모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때문에 학창시절, 착하고 얌전한 아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살았다. 무언가 내 생각을 말하기라도 하면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들에게 깜짝 놀라 입 다물고 다른 사람들 말 열심히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더니, 세상에… 참하고 얌전한 여자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 이왕 오해를 받은 김에 한번 착하고, 참하고, 얌전하게 살아볼까도 하였으나 어려운 일이었다. 알고 보니 착하고 참하고 얌전하게 산다는 것은 세상의 규칙을 잘 따른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규칙, 그래, 따르고 싶었으나 (정말이다! 나라고 왜 ‘착하고, 참하고, 얌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이해가 안 되어서 늘 허둥대다가 사고만 쳤고, 규칙 모르는 게임 속에서 남들 눈치만 이리저리 살피며 ‘죽어라고’ 뛰어다니는 것 너무 피곤해, 어느 날 그냥, 그만두자, 해버렸다.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땅도 갈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쭉 하늘도 땅도 멀쩡할 것 같아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야말로 덜컥, 출판사를 시작하고 책을 만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대책 없이 무모하게 일을 저지를 수 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당신들의 걱정이 내 대책이라고. 그리고 규칙에 연연하지 않으면 못 할 일이 없다고… 아직은 이게 비상인지 추락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규칙의 중력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 황홀하고 아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