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전경자
아이티
강국은
강국이고
좌판 벌리고
푸성귀 파는
할머니는
할머니고
그 옆에서
시루떡 파는
할아버지는
할머니하고
남남이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아이티
강국하고는
무관하고
비밀
하늘은 푸르다
바다도 푸르다
개나리는 노랗다
병아리도 노랗다
『아무리 아니라 하여도 혹시나 그리움 아닌가』에서 전재 (전경자, 띠,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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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다 아는 줄 알았는데 다 모르고 있었다
박소영
인터넷을 검색하여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분식집을 찾아냈다. 재래시장 한 복판에 자리한 분식집에는 어린 아이들부터 아주머니들에 이르기까지 손님으로 북새통이다. 친구와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이것저것 주문하여 먹기 시작한다. 그 때 얼굴에 검버섯이 잔뜩 끼고 바싹 마른 몸집에 두 다리가 휘어져 걸음조차 제대로 못 걷는 할머니가 들어와서는 별 말씀 없이 빈자리에 앉으신다. 분식집 주인아주머니는 “순대 드려요?”라고 묻더니 순대를 한 접시 내온다. 들어오는 사람들, 나가는 사람들, 떡볶이를 싸가는 사람들, 튀김을 먹으며 깔깔대는 사람들. 나는 자꾸만 옆자리의 할머니가 신경 쓰인다. 다 먹고 문가로 나가 주인아주머니에게 계산을 치를 때 돈을 얼마간 더 얹어 준다. 그리고 저 할머니께 다른 음식을 몇 가지 싸 드리라고 조용히 부탁해본다. “저 할머니는 다른 음식을 못 잡숴. 이가 없어서 순대만 드셔. 하루에 한 끼, 유일하게 잡숫는 게 순대야.” 나는 무안해진다. 어설픈 호의 같다. 겨우 할머니의 순대 값만 대신 치르고 나올 뿐이다. 순대를 우물거리는 할머니의 웅크린 뒷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 모두 다 어떤 의미로 엮여 있으면서도 모두 다 따로따로다. 헤게모니가 어쩌고저쩌고, 연대가 어쩌고저쩌고, 웹 2.0 시대가 어쩌고저쩌고, 미디어가 어쩌고저쩌고. 책을 읽고 분석을 하고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하고. 웃기고도 슬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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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전경자
시인. 가톨릭 대학교 영문과 교수. 외국어 문학 작품을 한역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문학 작품을 다수 영역한 번역 문학가이기도 하다. 『네토츠카의 사랑』, 『죽으며 살리라』, 『파리 대왕』, 『나르니아 이야기』(전 7권),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태평천하』(채만식), 『회색인』(최인훈), 『무기의 그늘』(황석영), 『불놀이』(조정래) 등을 영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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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소영
모자라서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그렇게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오래도 다녔다. 가톨릭대와 방송대에서 강의하는 것으로 호구지책을 강구하고 있으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고자 나름대로 아등바등하고 있다. 그리고 무릇 “오려면 보란듯이 와야하고/ 가려면 소리없이 가야하고/ 보려면 제대로 보아야하고/ 살려면 올바로 살아야하고/ 지려면 우아하게 져야하고/ 자려면 평화롭게 자야” (전경자, 「무릇」 중에서)한다고 되뇌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