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歸農)
백석
백구둔(白狗屯)의 눈 녹이는 밭 가운데 땅 풀리는 밭가운데
촌부자 노왕(老王)하고 같이 서서
밭최뚝에 즘부러진 땅버들의 버들개지 피여나는 데서
볕은 장글장글 따사롭고 바람은 솔솔 보드라운데
나는 땅임자 노왕한테 석상디기 밭을 얻는다
노왕은 집에 말과 나귀며 오리에 닭도 우을거리고
고방엔 그득히 감자에 콩곡석도 들여 쌓이고
노왕은 채매도 힘이 들고 하루종일 백령조(白翎鳥) 소리나 들으려고
밭을 오늘 나한테 주는 것이고
나는 이젠 귀치 않은 측량(測量)도 문서(文書)도 싫증이 나고
낮에는 마음놓고 낮잠도 한잠 자고 싶어서
아전 노릇을 그만두고 밭을 노왕(老王)한테 얻은 것이다
날은 챙챙 좋기도 좋은데
눈도 녹으며 술렁거리고 버들도 잎트며 수선거리고
저 한쪽 마을에는 마돗에 닭 개 즘생도 들떠들고
또 아이 어른 행길에 뜨락에 사람도 웅성웅성 흥성거려
나는 가슴이 이 무슨 흥에 벅차오며
이 봄에는 이 밭에 감자 강냉이 수박에 오이며 당콩에 마늘과 파도 심그리라 생각한다
수박이 열면 수박을 먹으며 팔며
감자가 앉으면 감자를 먹으며 팔며
까막까치나 두더쥐 돗벌기가 와서 먹으면 먹는 대로 두어두고
도적이 조금 걷어가도 걷어가는 대로 두어두고
아, 노왕(老王), 나는 이렇게 생각하노라
나는 노왕(老王)을 보고 웃어 말한다
이리하여 노왕(老王)은 밭을 주어 마음이 한가하고
나는 밭을 얻어 마음이 편안하고
디퍽디퍽 눈을 밟으며 터벅터벅 흙도 덮으며
사물사물 햇볕은 목덜미에 간지로워서
노왕(老王)은 팔장을 끼고 이랑을 걸어
나는 뒷짐을 지고 고랑을 걸어
밭을 나와 밭뚝을 돌아 도랑을 건너 행길을 돌아
지붕에 바람벽에 울바주에 볕살 쇠리쇠리한 마을을 가리키며
노왕(老王)은 나귀를 타고 앞에 가고
나는 노새를 타고 뒤에 따르고
마을끝 충왕묘(蟲王廟)에 충왕을 찾아뵈려 가는 길이다
토신묘(土神廟)에 토신도 찾아뵈려 가는 길이다.
『정본 백석 시집』에서 전재. (백석, 문학동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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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석상디기 밭을 얻어 농사를 짓고 싶다
이윤희
스물세 살 되던 해 봄 집을 떠났다. 몇 개의 도시를 거쳐 마흔 일곱이 된 지금 아파트 숲 속 15층에 살고 있다. 설거지를 하다 창밖을 내다보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지상. 저녁이면 꼬리에 빨간 불을 매달고 와서 고단한 몸을 쉬던 차들은 아침이면 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콘크리트에 몸을 누이고 쇳덩어리에 몸을 싣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한다.
바다를 메워 도시가 조성됐다. 진입로도 없고 가로등 하나 없는 곳에 달랑 학교가 먼저 들어섰다. 그 학교에 처음 모인 선생들과 학생들은 네모난 아파트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는 빌딩들을 보며 텃밭을 가꿨다. 틈틈이 풀을 뽑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 삼아 채소를 길렀다. 시가지가 형성되지 않아 음식 배달도 되지 않는 그곳에서 상추며 고추를 따다 한솥밥을 해 먹으며 지내는 동안 뽕나무 밭이 변해 바다가 된 것이 아니라 바다가 변해 콘크리트 숲이 되었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은 심어 놓은 오이를 따다 마사지를 하기도 했고 봉숭아꽃물을 들이기도 했다. 겨울이 다가올 때 여름은 아직 아이들의 손톱 끝에 봉숭아꽃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완전히 도시가 들어서자 도심 속 텃밭은 전설이 되어 버렸다. 텃밭이 있던 자리엔 조경수가 심어졌고 봉숭아꽃이 있던 자리를 꽃잔디가 대신했다.
답답한 마음에 15층 높은 곳에 열심히 식물들을 옮겨 심었다. 지상과 단절된 뿌리들은 고맙게도 잘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내 나이 또래의 많은 도시인들처럼 전원생활은 나의 ‘로망’이 되었다. 나도 도연명처럼 고향에 돌아가 세상과는 사귀지 않고 그냥 친척들과 더불어 정담을 나누고 이웃이 찾아와 봄이 왔다고 알려주면 밖으로 나가 밭을 갈고 살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고도 몇 해가 지났고 아직 나는 붙박이 같은 도시의 삶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책을 읽는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농업은 환경보존적 기술만이 아니라, 삶의 질을 보전하고 한 단계 더 높이고자 하는 사회, 경제적 측면과 농촌 지역 사회의 활성화를 동시에 겨냥한다.”(『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中 )
나도 이제 훈장 노릇은 그만두고 노왕에게 석상디기 밭을 얻어 농사를 짓고 싶다. 장글장글한 햇살을 맞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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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백석 (1912-1995)
평북 정주 출생으로 본명은 백기행. 1929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1934년 귀국,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생활을 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와 아들」이 당선되었으며, 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하였으며, 「통영」「적막강산」「북방」등 그의 대표작들은 실향의식을 한국 고유의 가락에 실어 노래한 향토색 짙은 서정시이다. 광복 후에 고향에 머물다 1963년을 전후하여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자에 의해 사망연도가 1995년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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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윤희
인천 신송고 교사. 학창 시절 “눈이 오는 날이면 부츠를 신어도 차오르는 눈에 발이 젖는 곳”에서 아이들과 생활한 한 선생님의 수기를 읽으며 시골학교 교사의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루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강원도에서 12년, 인천에서 14년째 교사로 살고 있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지론대로 아이들과 더불어 많은 추억을 만들고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 교육 현장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대한 절실함은 사라지고 성과를 재는 잣대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남아 있다. ‘숫자’가 아이들의 삶을 대신 하는 동안 꿈도 사라지고 자라는 기쁨도 아픔도 다 잊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몸서리 칠 때가 많다. 그런 내게 학교 도서관은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좌절과 절망을 잊게 하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