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어자(木魚子)
권경인
밖으로 적막하나 안으로 고요한 사람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한 사람
가난하지만 늘 깨어 있는 사람
아무 한 일이 없으나 그는 그곳에 살았다
그가 살았음으로 그 땅은 아름다웠다.
『변명은 슬프다』에서 재수록. (권경인, 창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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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착하지 않은 자의 거대한 희망
이덕순
동무 15명과 치악산 자락에서 독서여행을 하던 밤, 선생님께서는 시 한 편을 읽으셨다.
듣고 있던 내 귀가 세워지더니 이내 환한 미소로 옮겨지는데, 그 웃음은 그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닌 내 희망을 읽어 준, 시를 만나는 존재의 화답이었다.
2평쯤 되는 방 파란색 커튼이 처진 방 너머로 해가 뜨고 있었다.
방이 서서히 밝아 오는데 찾아오는 두려움
내가 있는 방만이라도 해가 뜨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몸은 두꺼운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떨고 있었다.
미래를 꿈꾸고, 희망하는 것을 강요받고 성장한 자가
세상 속 인간의 한계를 보며
어제의 내일인 오늘을 맞이한다는 것
그것은 절망이었으리라!
그 두려웠던 아침으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오늘 세상은 눈부시게 밝고 아스팔트 위 열기는 공기에 문양을 새길 만큼 덮지만 그 속을 걷고 있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편하다. 절망 속에서 깨달은 희망, 열린 눈으로 고요하고 너그럽게 속박한 삶을 깨어 그저 살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금시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내가 지금 여기에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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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권경인
시인. 1991년『한국문학』신인상에 「인동초」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1998년 첫시집 『변명은 슬프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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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덕순
자고 입고 먹고 싸는 것이 일이고 이 외에 잉여 시간에 그림을 그린다. 재미있어 그렸는데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재미있어 그리는 것이지만 좀 잘 그려 보고 싶어, 보는 이들이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실존을 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하여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