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고운 자락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금빛 은빛 섞어 짠
하늘의 고운 자락 내 가졌다면
밤과 낮과 황혼의
푸르고 어슴푸레하고 때로 어두운
그 채단, 가시는 길 위에 깔으리다
그러나 내 가난하여 가진 것은 꿈 뿐,
나의 꿈, 임의 발 아래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고 가시옵소서
내 꿈 위를 걸으시오니
『내가 사랑하는 시』에서 전재 (피천득, 샘터,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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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 마디]
꿈으로 엮은 주단, 세상에서 제일 고운 하늘의 천
유승재
높고 화려한 천정에 아름다운 샹들리에로 치장된 멋진 예식장 대신, 동네의 작은 예식장을 예약하였습니다. 그렇게나 입고 싶어 하던 값비싸고 유명한 웨딩드레스 대신, 그 작은 예식장에서 간단하게 빌려주는 드레스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멋진 스튜디오에서 느긋하게 치장 받으며 예쁘게 찍고 싶어 하던 웨딩 사진은 제가 직접 촬영해주기로 하였습니다.
평생 한 번뿐이라는, 그래서 좀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예비신부는 지금 최저가 비행 편과 자유여행 편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방은 좁아도 되니 거실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찾던 신혼집은 원룸이라도 둘만이 있을 공간이면 족하다고 위안을 합니다. 이 시는 저 자신보다는 제 신부가 될 미래의 아내에게 자주 읽어줍니다.
남들 다 가지는 좋은 옷에 좋은 신발, 좋은 가방에 관심 가득했던 아가씨가 한 남자를 사랑하고, 그 남자와 미래를 설계하며, 그 남자에게 맞춰나가는 헌신적인 여인이 되고, 아내가 되어갑니다.
신발을 사야 할 돈은 벌이가 시원찮지만 벌이의 태반을 학생들 밥값으로 쓰는 남자의 용돈으로, 가방을 사야 할 돈은 남자가 가지고 싶어 하는 카메라 렌즈 값으로 날려가면서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전화에 대고 보고 싶다고 합니다.
제가 가진 것은 꿈뿐인지 모르겠습니다. 태권도를 전공한 사진가로서, 저는 언제나 꿈만을 쫓아 살아 온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준비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부르짖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할 때면, 오밤중에 공원 한 켠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기도 합니다. 다만, 그 보잘것없는 꿈이라도 깔아줄 수 있고 즈려밟아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지금은 참 행복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랑하는 사람을 앞길에 자신들의 꿈의 주단을 엮어 깔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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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1865 - 1939)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더블린의 샌디마운트가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더블린 및 런던에서 화가가 되려고 수업했으나 전향한 후 시작(詩作)에 전념, 최초의 시집 『오이진의 방랑기 The Wandering of Oisin and other Poems』(1889)를 펴낸다. 1891년 동료 시인들과 함께 아일랜드 문예협회를 창립, 당시 팽배하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에 참가했으며, 이어 그레고리 부인 등과 협력하여 1899년에 아일랜드 국민극장(후의 애비극장)을 더블린에 창립했다. 이 동안 그는 환상적이며 시적인 『캐서린 백작부인』(1899년 초연)을 비롯해 몇 편의 극작품을 발표하기도 했고,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나중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후에는 원로원 의원이 되었다.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시집 『마이켈 로버츠와 무희(舞姬)』(1921), 『탑(塔)』(1928), 산문집 『환상 A Vision』(1925)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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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피천득 (1910 - 2007)
1910년 서울 출생. 호는 금아琴兒이다. 상해 호강대학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했다. 경성대학 예과 교수, 서울대학교 문리대 및 사법대 교수를 역임했다. 1910년 <신동아>에 ‘서정소곡’을 발표하면서 문필 생활을 시작하였다. 작품으로 시집 『꿈』, 『편지』, 수필집 『여성의 미』, 『모시』, 시문집 『산호와 진주』, 『생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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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유승재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으러 떠난 캄보디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사랑 받고 있다는 것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 갈 수 있기에
그 무엇보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