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3
이성복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다고 나는 말했지요
전설 속에서처럼 꽃이 피고 바람 불고
십리 안팎에서 바다는 늘 투정을 하고
우리는 오래 떠돌아 다녔지요 우리를 닮은
것들이 싫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나
가까워 졌지요 영락없이 우리에게 버려진 것들은
우리가 몹시 허할 때 찾아와 몸을 풀었지요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염려 마세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답니다
『그 여름의 끝』에서 전재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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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 마디]
잘 있나요?
이은유
나는 허기가 집니다. 앞 다투어 지나가는 것들에.
그래서 채워지는 몸과
텅 비는 마음의
조율이 그러한 것이라면 잘 지냅니다.
당신의 염려로 당분간 잘 지낼 것이고
어쩔 수 없는 지루한 당분간 역시 지날 것이니
부디.
염려 마세요
감상적인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시도 때도 없이 줄줄 새어나오는 경우를 싫어했습니다.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남들보다 한 참이나 늦은 경험을 했습니다.
안부를 묻고 싶지만 안부를 물을 수도 없고 내게 물어올 리도 없는 사람을 생각하다 이 시를 읽고 혼자만의 감상에 빠져 커피숍에서 질질 울어버린 것을 보니 새삼 나도 어쩔 수 없는 찌질하고 나약한 인간이구나 싶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조금은 어딘가에 풀어헤치고 싶었나 봅니다.
감상과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지나친 감상에 경계하고 살아야 하겠다고 건방진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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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이성복
1977년 「정든 유곽에서」 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 등단했다. 대구 계명대학 강의 조교로 있으면서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1』에 동인으로 참가했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평가하는 말로 “철저히 카프카적이고 철저히 니체적이며 철저히 보들레르적”이었던 시인은 1984년 프랑스에 다녀온 후 사상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 그리고 논어와 주역에 심취했다. 그리고 낸 시집이 동양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남해금산』이다. 1989년 「네르발 시의 역학적 이해」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1991년 프랑스 파리에 다시 갔다.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한 모색의 일환으로 시인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와 함께 후기구조주의를 함께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테니스. 시인에게 마치 애인과도 같은 테니스는 그에게 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삶을 보다 즐겁게 만들었다. 1982년 2회 김수영문학상, 1990년 4회 소월시문학상, 2004년 12회 대산문학상, 2007년 5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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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은유
이제는 흔해빠진 취미인 사진을 취미로 나 혼자 만족하는 흔해빠진 사진을 주로 찍는다. 글 솜씨라고는 없는 내가 조금은 가벼운 농담처럼 바통을 넘겨받긴 했으나 막상 해놓고 보니 지극히 신변잡기적이고 부끄러운 글에 어쩔 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