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의 노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코르도바.
멀고 외로운.
검은 조랑말, 큰 달.
그리고 내 안낭(鞍囊)*에 올리브.
비록 나 길을 알아도
나는 코르도바에 가지 못하리.
평원 속으로, 바람 속으로
검은 조랑말, 붉은 달.
죽음이 나를 보고 있네
코르도바의 탑들에서.
아! 멀기도 하여라!
아! 내 장한 조랑말!
아! 그 죽음이 나를 기다리리
내 코르도바에 가기 전에.
코르도바.
멀고 외로운.
* 안낭 : 안장의 주머니
『강의 백일몽』에서 전재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민음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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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충직한 나의 검은 조랑말
심선옥
네루다가 말했던가 “시가 나를 찾아왔다”라고. 정말 그랬다. 몇 년 전, 로르카의 이 시가 내게로 왔다. 일간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이 시를 처음 읽은 순간, 내 몸의 신경세포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휙, 낚아 채인 느낌. 또는 무심히 걸어가다 발이 턱, 걸려서 나동그라진 느낌 같은 것이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하나의 장면이 내 정신과 마음을 가득 채운다. 끝없이 펼쳐진 텅 빈 벌판, 어두운 하늘에는 크고 붉은 달이 걸려 있고, 거친 바람 속으로 검은 말을 타고 하염없이 가고 있는 외롭고 지친 사람의 영상이다. 목적지가 있지만 끝내 그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음을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을 기다리는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의 무표정하고 결연한 발걸음. 그의 위로가 되는 것은 충직한 검은 조랑말뿐이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이미 삶의 어떤 진실을, 삶의 그 뒷면을 보아버린 자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리라.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죽음이 우리를 낚아챌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야만 하는 것. 그렇게 외롭고 지치고 허무한 것이 또한 삶의 진실이리라.
이 시와 겹쳐지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모랫바람 가득한 사막에서 자신의 마음을 점령한 질투와 어리석음과 허망함과 싸우는 맹인 무사의 고독한 칼놀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동사서독>의 장면이다.
외롭고 지친 기수(騎手)와 맹인 무사(武士)의 형상은 내 마음속에서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절망과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지독한 슬픔이 흘러넘쳐 삶의 외로움과 허망함을 씻어준다. 늦은 밤. 거친 바람 부는 벌판 같은, 사막 같은 서울에서 충직한 검은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며 외롭고 지쳐 있는 마음에 낮게 속삭여준다. ‘괜찮다, 괜찮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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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Federica Garcia Lorca, 1898-1936)
1898년 스페인 그라나다 부근의 푸엔테바게로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강요에 따라 그라나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곧 그만두고 만다. 1919년 마드리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살바도르 달리, 루이스 부뉴엘 등의 예술과들과 친분을 갖는다. 스물 두 살 때 『시집』을 발표한 뒤 시와 희곡 등의 문학은 물론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등 예술 전반에 걸친 다양한 활동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36년 스페인 내란이 발생한 직후 민족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시집으로 『깊은 노래의 시』, 『집시 민요집』, 『익나시오산체스 메히아스를 애도하는 노래』, 희곡 『피의 결혼식』,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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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정현종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3월과 8월에 각각 「독무」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현대문학』에서 3회 추천을 완료하고 문단에 등단하였다. 1966년에는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하였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하였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2005년에 정년퇴임하였다. 제3회 연암문학상, 제4회 대산문학상, 제1회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등의 시집과 『고통의 축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슬』 등의 시선집이 있다. 시론과 산문을 모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숨과 꿈』, 『생명의 황홀』 등을 펴냈으며 예이츠, 네루다, 로르카의 시선집을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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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심선옥
열세 살 생일 때 친구가 선물해준 꽃무늬 일기장. 그 일기장의 한 면에는 세계의 명시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거기서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 푸쉬킨의 「삶」, 김소월의 「먼후일」, 「진달래꽃」, 김동명의 「내 마음은」 같은 시를 읽었다. 그때 이후 시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일찍 시작한 객지생활에서도, 대학시절에서도, 대학을 휴학하고 내려간 고향집의 뒷방에서도 시는 늘 나와 함께 있었고,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시를 읽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20년째 그렇게 살아 왔다. 지금은 시가 나를 다른 길로 이끈다. 언어가 아닌 좀 더 깊은 마음과 만나라고. 당분간 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