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에서 전재 (곽재구, 창비, 1999)
---------------------------------------------------------
[소개한 이의 한마디]
먹먹하다
윤형필
먹먹하다[멍머카다]
1. 갑자기 귀가 막힌 듯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다.
2. 체한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다.
이 단어의 따뜻함이 참 좋다. 이 단어를 발음할 때 콧속으로 스미는 그 울림도-이 울림을 제대로 느끼려면 처음 ‘멍’을 발음할 때 비강에 힘을 꽉 줘야 한다-참 좋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엎드린 걸인의 거무께한 손에서, 가느다란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의 공허한 눈빛에서, 하루 생계에 투신하시는 아버지의 작아진 등에서, 난 이 먹먹함을 본다. 멍머캄을 느낀다.
나는 시를 모른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시를 읽은 것은 중, 고등학교 교과서가 전부였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지은이를 알고, 몇 구절 읊을 수 있는 시는 이 시가 유일하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 시를 만났다. 이 시는 민중시이며,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갈망하는 저항시라고 했던 선생님의 말씀이 드문드문 기억난다. 지금보다 피가 뜨겁고 세상을 향해 가운뎃손가락 뻗길 좋아했던 나였는데, 선생님의 말씀이 와 닿지 않았다. 되려 이 시를 함부로 난도질하는 것에 화가 났다. 시를 전혀 모르는 나였지만, 이 시는 아름답고, 먹먹했다. 내 치기 어린 슬픔이 넘쳐흘렀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시를 모른다.
아무도 나의 개똥철학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쓸데없이 시끄럽고, 혼자만의 슬픔에 갇혀 요란하고, 불필요한 거짓말과 쉬운 냉소로 차가워진 세상을 보면 악을 쓰고 싶어진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 무엇인가 꼭 의미를 찾아야 참된 삶이라고-경영학이든 철학이든 똑같다-당신도 그 의미를 찾아 어서 달려나가라고 누군가 뒤에서 채찍질한다. 정말 피곤한 세상이다. 그저 살아가는 삶 자체에 의미가 있을진대, 내 항의는 소리가 되지 않는다. 힘없고 약한 누군가의 쓰다듬음과 말 없는 응시에서 진정한 위로를 느낀다. 그저 먹먹하게 살아가야지. 알고 있다. 아무도 내 개똥철학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먹먹하다” 어쨌든. 난 이 단어가 참, 좋다. (*)
-------------------------
작가 소개
곽재구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5월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1983년 첫시집『사평역에서』(1983)를 발표, 이후 『전장포 아리랑』(1985), 『한국의 연인들』(1986),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199년) 등과 기행산문집『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1993), 창작장편동화『아기참새 찌꾸』 (1992) 등을 펴냈다. 제10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다.
-------------------------
필자 소개
윤형필
가볍지만 진지하게,
진지하지만 가볍게.
그리고
염치와 소신을 가지고,
또 다시 진지하지만 가볍게,
가볍지만 진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