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사랑의 변주곡』에서 전재 (김수영, 창작과비평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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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치열하게 사랑하기
박두리
지금 우리가 가장 해결해야할 문제는 무엇일까. 생활, 취업, 여행, 소비, 결혼… 세부적으로는 모두 다르겠지만, 큰 카테고리 안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가슴 속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계십니까? 혹시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만으로 혹은 불확실한 미래의 기대로만 당신의 심장을 채우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위기, 그러한 긴장감은 삶을 피곤하게 하지만, 여전히 치열하게 사랑하는 것은 모든 이들의 잠재적 소망. 촛불의 죽음만큼이나 찰나적이고 불안전한 죽음의 모습이 바로 사랑이기에, 치열한 사랑은 생명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닐까.
김수영의 산문 중 이런 글이 생각난다. “나의 여자는 죽음 반 사랑 반이다. 나의 남자도 죽음 반 사랑 반이다.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다면 죽음이 없다.” 참 유치하고 단순하지만,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살고 싶다’와 ‘사랑하고 싶다’의 어원은 같은 데서 연유한 것이라면, 난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얼마나 치열하게 사랑해왔을까? 자꾸만 나를 잃어가는 만큼 자신감도 잃어만 간다.
아직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지만, 벌써 치열하게 살아가야할 방법을 망각해버린 것은 아닌가 두렵다. 이런 잔인한 망각을 당하느니, 차라리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사랑하다 죽고 싶다는 망상에 빠지는 게 낫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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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김수영 (1921-68)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선린상고(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재학했고, 성적은 우수했으며 특히 주산과 미술에 재질을 보였다. 동경 상대에 입학했으나 1943년 조선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만주로 이주하였으며 심영 등과 연극을 하다가 1946년 문학으로 전향했다. 1946년 연희전문 영문과 4년에 편입했고, 1947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하였다. 한국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징집되어 참전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1952년 석방되었다. 이후 부산, 대구에서 통역관 및 선린상고 영어교사 등으로 일했고, 잡지사와 신문사를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1948~1959년 사이에 발표했던 시를 모아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춘조사)을 간행하여 제1회 시협상을 받았고, 에머슨의 논문집 『20세기 문학평론』을 비롯하여 『카뮈의 사상과 문학』, 『현대문학의 영역』 등을 번역한 바 있다. 1968년 6월 15일 밤 귀가길에 집 근처에서 버스에 치어 머리를 다쳤고, 의식을 잃은 채 적십자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1969년에 사망 1주기를 맞아 도봉산에 시비가 건립되었고, 민음사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김수영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하고 있다. 2001년 10월 금관문화훈장이 사후에 수여되었다. 『거대한 뿌리』,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 등 2권의 시집과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 등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에 간행된 것들이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쓴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한 뒤 마지막 시 『풀』에 이르기까지 200여 편의 시와 시론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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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두리
조금씩 조금씩 소망을 향해 다가가기. 돈에 얽매이지 않기. 타인의 것을 탐 내지 않기. 적당한 이성과 적당한 감성 유지하기. 놀 땐 놀기. 내가 살아가는 방법 혹은 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