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전재 (최영미, 창작과비평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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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서른 살이 되었다는 것
장상기
1. ‘잔치’의 시작도 모른 채, 어느덧 파장의 중심에 서 있다. 그렇게 힘든 일도, 그렇게 괴로운 일도, 그렇게 심각한 일도 없었던 나날들. 무엇이 그리도 나를 힘들고, 괴롭고, 심각하게 했을까. 내 20대는 감정의 흔적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자꾸만 기억 저편으로 꾸물꾸물 기어간다.
2. 사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이토록 차갑고 외로운 것이었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차라리 뜨겁지나 말았을 것을. 정신은 아직도 ‘잔치’의 여흥에 취해있지만, 육신은 자꾸만 생활로, 사회로 쫓겨난다. 가속의 힘으로 돌아가는 시침의 소리 속에 그렇게 정신은 무기력과 타협의 선상을 오고 간다.
3. 스포츠형 머리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던 20살 그때, 짙은 청색 프렌치 코트를 입고 있던 한 시간강사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어떠한 그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을까. 멋진 시를 얻은 기념으로 잔디밭에 누워 소주를 걸치고는 몇 번을 읽었던 이 시는 20대의 나에게는 낭만 그 자체였다.
4. 숙취로 고생한 밤을 지새우고, 눈을 떴을 땐 10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 후였다. 어느덧 이 시는 아픔으로 자리잡아버렸다. 아직도 나는 ‘지갑을 챙기고’ 가야하는지, ‘마지막까지 남아’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답답한 생활이, 현실이 자꾸만 목을 죄여오지만 더욱 슬픈 사실은… 그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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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최영미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출간된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집으로는 이례적으로 50만부 이상 팔리며 그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도착하지 않은 삶』과 산문집 『시대의 우울』,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소설 『흉터와 무늬』 등을 발표했다. 2006년 시집 『돼지들에게』로 제13회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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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상기
술 마시길 좋아하고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사진 찍길 좋아하고
문학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그 중에서도
술 마시면서 문학 이야기하는 사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