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집
오철수
詩를 써서, 만약에
돈을 벌게 되어 근교 어디쯤에 집을 사게 된다면
나는 마당에 뒤란에 담장 옆에
해바라기를 엄청나게 많이 심을 것이다 하여
이웃들이 해바라기집이라고 부르고
잠깐 다니러 온 이들도 우리집을 보며 해바라기집이라고 부르고
머리 희끗희끗한 내 처가 출퇴근하는 것을 보고는
논 건너 아랫마을 분이 '저기 해바라기집 안사람이야'라고 소개하고
아들도 해바라기집 아들로 불리고
친정 나들이하는 딸도 해바라기집 딸로 불리고
가끔 호주머니에 돈이 없어 외상 신세지는
동네구멍가게 장부에도 '해바라기'로 적히도록
해바라기를 많이 아주 많이 심을 것이다
마당이 온통 노란 날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내 집에 처음 오는 이들도 버스기사에게
상가집이라고 묻지 않고
해바라기집이 어디냐고 물을 수 있게
만약에 내가 詩를 써서 돈을 벌어…
『독수리처럼』에서 전재 (오철수, 손과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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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소박한 꿈 하나
신상철
1. 언젠가 아내가 말했다. 아파트 보다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고. 난 대답했다. 단독주택은 비싸다고. 다시 아내는 말했다. 굳이 서울에 살 필요가 있냐고. 근교로 나가면 된다고. 근교로 나가자는 아내의 말에 흠칫 놀란 걸 보면, 나는 아마도 도시의 편리함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다.
2. 그때는 몰랐다, 내가 누리는 언뜻 보기에 안락한 편리함의 이면에는 효율성으로 점찰된 비인간적인 측면이 있었음을. 아니 몰랐다기 보다는 무시하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그 사실은 만만하게 무시할만한 건 아니다. 요즘 들어 자꾸, 언젠가 읽었던 한 편의 시가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시가 바로 오철수 시인의 해바라기집이다.
3. 그래서일까.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아내와 함께 꾸밀 수 있는, 작지만 소박한 정원을 가진 그런 집에서 사는 꿈이 생겼다. 햇살이 살포시 비치는 어느 봄날 아내와 가꾼 화초가 예쁜 꽃을 피우고 그 꽃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따스한 풍경이 그려진다. 물론 그 삶이 시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언제나 따뜻하고 낭만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편리함과도 거리가 있을테고. 하지만 그걸 포기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큰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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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오철수
김규동, 김명수 시인의 추천으로 1986년 <민의>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 노동문학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사이버노동대학 문화교육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시집 『아버지의 손』, 『먼길 가는 그대 꽃신은 신었는가』, 『아주 오래된 사랑』, 산문집 『나무로부터 배우는 사랑』 등을 펴냈다. 1990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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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신상철
언젠가 중간고사던가 기말고사던가 시험을 보던 기간에 소설책 한 권을 들고 다닌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본 복학생 형들이 시험 공부는 다 했냐고 하면서 걱정스런 눈길로 쳐다보단 기억이 난다. 그게 내가 생활하던 동네의 풍경이었지만 난 꿋꿋하게 책을 가까이 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여유만은 잃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