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정호승
너도 무릎을 끓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너도 무릎을 끓어야만
걸을수 있다는걸 아는데에
평생이 걸렸느냐
차디찬 바닥에
스스로 무릎을 끓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
무릎을 끓고
먼산을 바라볼 때가 길 떠날 때이다
낙타도 먼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끓고 사막을 바라본다
낙타도 사막의 길을 가다가
밤이 깊으면
먼저 무릎을 끓고
찬란한 별들을 바라 본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서 전재 (정호승, 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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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이렇게 또 자랐다
손민희
통열(痛烈)한 청춘. 칼날 같은 결심.
20대의 시작은 이러했다.
스무 살.
뜨겁게 결정하고, 차갑게 분노했다.
겁날 것도 없고, 거칠 것도 없는 하루하루는
세상에 대한 도전이었다.
‘자신만만’함은 결국
‘자만’(自慢)으로 변질되었다.
스물일곱.
며칠이 지나면
스물여덟.
사회생활 5년차.
고집을 버린 후
나는 부드러워졌다.
열망이 식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매끄러워졌다.
남들에게 고개 숙일 줄 아는 내가 참 대견하다.
타인의 마음을 받고, 녹여낼 수 있는 내가 참 뿌듯하다.
이렇게 또 자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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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정호승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갈대』, 어른이 읽는 동화 『연인』, 『항아리』, 『모닥불』 산문집 『소년부처』 등을 펴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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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손민희
23살.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던 것을 과감하게 ‘학원 강사’로 질러버렸다. 사교육을 이끌어가는 전문직. 입시 학원 강사. 선택의 계기는 청년실업, 수입,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원동력은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함께한 5년여간 내 생활은 ‘즐거움’이었다. 입시와 성적에 지친 아이들. 친구처럼 선배처럼 서로를 다독였다. 키 150cm 남짓했던 첫 제자 녀석들이 올해 대학을 입학하면서 오래간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 그만두면 안 되겠다.’ 여전히 체력적으로는 힘겨운 하루지만, 아이들이 주는 마약 같은 엔돌핀.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