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에서 전재 (정호승, 창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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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이의 한마디]
아버지란 사람
김경선
‘드르릉’ 이른 아침부터 문자가 울린다. 누굴까? 부스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채 떠지지 않는 눈으로 문자를 확인하다. 액정을 확인하는 순간, ‘풋’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자ㄹ 지내 느나?” 아버지다.
가족과 떨어져 산지 3년, 내년이면 칠순을 맞을 아버지는 가끔 이런 서툰 문자로 내 안부를 물으신다. 그러면 난 아버지의 짧은 문자에 복수라도 하듯 더 짧은 답문을 보낸다.
“응 잘 지내!” 보내놓고도 나의 인색한 감정표현에 실소가 터진다. 하지만 부녀지간에 이런 멋없는 문자라도 오가게 된 건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술 마시는 아버지를 싫어했던 것인데, 그의 애주가 도를 지나쳤던 탓이다. 그리고 어느 즈음, 유독 술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버지를 봤을 때, 난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 버렸다. 한때였지만 한번 닫힌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고, 이후 냉랭해진 딸과의 관계를 어떻게든 풀어보려 애쓰던 아버지를 외면한 채 세월은 흘렀다. 자연스레 부녀지간은 서먹해져 갔다. 집 안에 아버지와 단둘이 있을라치면 괜한 약속을 만들어 외출을 했을 정도였으니 그 어색함이란 이루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들른 집 앞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마주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말없이 술잔을 건넸고, 나 또한 말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어색한 침묵 속 먼저 말문을 연 건 아버지였다.
“많이 힘드냐?” 짧은 물음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버거움을 온 몸으로 막고 있던 그 즈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나의 심경을, “지나간다. 다 지나가” 이 한마디 덧붙이곤 아버진 이내 말씀 없이 술만 드셨다. 그 순간, 난 어린 시절 늦은 밤 거실에 홀로 앉아 깡 소주를 들이키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기억해낸다.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였을 그 시절, 아버지도 그랬던 걸까? 그렇게 힘겨운 시간들을 혼자서 외롭게 버티어 내고 있었던 걸까?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돼서야 겨우 아버지를 이해해 본다.
어느 날 지금의 아버지 나이가 돼 있을 나를 생각해 본다. 그때 난 또 인생의 어떤 것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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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정호승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갈대』, 어른이 읽는 동화 『연인』, 『항아리』, 『모닥불』 산문집 『소년부처』 등을 펴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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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경선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됐지 뭐 만족한 삶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혼란이 찾아왔고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한때 그 해답을 찾겠다며 술에 의지해 산적도 있었지만 부질없음을 알고 요즘은 정신수양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글을 써 밥 벌어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 고해의 길에서 잠깐 비켜서 있다. 평화롭냐고?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