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서 전재 (진은영, 문학과지성사, 2003)
----------------------------
필자 소개
진은영
2000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 『우리는 매일매일』(2008)이 있다. 각별히 좋아하는 철학자들에 대해 책을 쓰기도 했다.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2004), 『니체의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2007)와 같은 책들이다. 최근에는 청소년들과 니체의 철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어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2009)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