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 블로거에게
김이듬
늦어서 미안
보름 전에 올리기로 한 시를 아직 못 썼어
아버지가 위독해요
접속이 안 되는 깊은 산에 왔어요
내일은 보낼게요
이거 못할 짓이야
쩔쩔매다가 편집자에게 영감을 보내주면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했어 그는
‘파이팅입니다.
문화웹진 나비… 아무래도 좀 고색창연한 느낌이 지배적이어서,
문화웹진 나방……으로 바꿀까 하는데 어떠세요?
이상, 십 원 어치 영감이었습니다.’라고 보냈어.
사실, 인색한 영감은 물론이고 고무도 독려도 소용없어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짜증을 냈어
딸기우유를 쥐고 빨대를 찾아달라고 하니까 방안에 누워서 구시렁거렸어
난 그걸 찾을 때까지 물건들을 마구 아무 데나 내던졌거든
네 시선을 생각하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안달하고
난 정말이지 한 줄도 못 쓰겠어
실시간 방문객수가 나타나고 알쏭달쏭한 댓글을 읽을 수 있는 거기
아무도 없고 아무도 안 본다는 망상도 없고
나를 기만하는 희열과 난폭함도 사라져
달리 쓸 줄을 모르겠어
이미 쓴 시는 관심 밖이고 다음에 뭘 쓸 지 생각이 없어
내 시를 읽었을 너를 생각해
55사이즈의 곱슬머린지
라디오를 끄고 읽었는지 운전면허증을 딸 건지
몸집이 자그마하고 단정한지 가슴은 하얗겠지
종일 굶다가 밤에 초콜릿 한 상자 다 먹는 거 아니니?
무릎을 안고 있니? 치마를 들어 보여줄래?
네가 사는 동네도 여기처럼 작고 더러운 마을이 아니기를
침대에 누우면 막 어른거려
네 얼굴이 네 육체가 네 목소리가 와르르 쏟아져
쉼 없이 어지러운 속도로
‘꼬마야, 너 이거 좋아하지, 만져볼래?’
그 거무스름하고 커다란,
끝이 딸기처럼 볼록하게 솟아있던 늙은 미치광이의 페니스가 눈앞에
빙글빙글 선반 위에 물건들이 돌고 와르르 눈사태가 나고 언제나 먼저 검은 파도가 들이닥치고 벽에 머리가 부딪쳐 매일 누군가 나를 노려보고 구시렁거려
넌 양팔을 친친 뒤로 묶인 채 맑은 눈으로 지금 말을 하는 내 기분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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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이듬
2001년 계간 『포에지』 가을호에 「욕조 a에서 달리는 욕조 A를 지나」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시집 『별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을 펴냈고, 올 연말에 시집 1권, 산문집 1권을 펴낼 예정이다. 현재 아웃사이더, 소수자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