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뜨기 배우의 기쁨
김이듬
난 이 순간이 끝나길 빈다. 곧 이도저도 놓친 관객들이 돈을 받고 모여들 것이다. 우린 굉장한 쇼가 끝나자마자 무대에 뛰어오르거나, 정규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직전에 무대로 달려 나가는 사람. 짧은 팬터마임을 한다. 하긴 메이플라이 입장에선 지나치게 길다. 얘들을 부르려고 조명을 켜진 않았다. 평생이 짧고 여기 안 오려고 한쪽 날개를 너무 버둥거리다가 더 빨리 도착해 타죽는 운명.
지금까지 우리는 오 분짜리 ‘죽은 자의 노래’, 삼 분 분량의 ‘공공위생시설과 부랑아들’이라는 촌극을 했다. 이따위 공연을 위해 평생을 바칠 각오는 없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해도 비애는 없다. 열심히 살지 않는 게 내 도전이다. 난 벽과 묘지, 시체 전담 배우다. 그러나 내 뺨이 얼마나 발그레하고 누추한지 눈물겨워 말할 수 없다. 어차피 말 할 수 없는 역할이다. 난 목을 못 쓰는 가수고 음악광이다. 가끔 흥분해서 팔을 막 휘저어대면 “야, 인마! 수화하지 말고 말을 해라, 말을!” 쥐어 박힌다. 술 먹고 뻗어 하늘을 보면 왜 사람들이 때때로 하늘을 보라는지 알 것 같다. 보석가게처럼 반짝거리는 별, 섹시한 궁둥이, 비행기 한 대 슝, 로켓이 발사되고 콘돔이 벗겨진다. 나도 하늘에 대고 팡팡, 다시 우주적 희망을 가져야한다. 충분히 정액이 고일 때까지.
누가 주정하라고 했나? 난 자네에 대해 알고 싶지 않네. 자네 전생도, 후생도, 그림자도, 있지도 않을 선생도 궁금하지 않단 말일세! 말이 되는 대본을 써야할 거 아닌가? 눈먼 지원금이 돌아다니는데 그걸 못 낚아채? 일단 심의는 통과해야지. 이 얼간아! 오 분도 못 버티는 시골뜨기 개자식아! 눈물을 짜란 말이야. 카타르시스 몰라? 감동도 위안도 없으면 재미라도 있어야지. 그것도 안 되면 너도 절벽에서 뛰어내려.
제기랄, 배운 것들이란! 난 왜 묻지도 않은 말을 지껄여가지고. 해변에 성당이 너무 멋져 무심코 들어갔다가 고할 죄가 없어 박차고 나왔지 않았나? “저 잡놈이 왜 저기 있어? 어서 끌어내!” 나는 여기서 말하면 안 된다.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기 때문에 기절해야한다. 야간열차를 타고 집에 내려가면 아버지는 새로운 엄마들을 소개하고, 난 “엄마!” 하고 밝게 외쳤다. 좀 어색해하면 ‘엄마’를 계속 외치다가 발작을 하고 다시 벌떡 일어나 큼지막하고 벌건 수세미 같은 혀로 그릇을 닦았다. 엄마 궁둥이도 닦아줄까요? 어차피 소리 질러도 저 공작은 뚱보 제사장과 대머리 대통령은 못 알아들을 테니까, 난 아무도 못 알아먹을 마임을 한다. 내가 무릎 꿇으면 하늘도 별도 엿 먹으란 뜻이다. 쫙 엎드려 숨을 안 쉬면 무위도식이 꿈이란 말이고, 두 손바닥을 마구 두드리는 건 넌 곧 죽으리라는 예언이다.
그러나 내 예언을 일광욕처럼 쐬며 우리들은 나날이 자란다. 야외광장에 웃통을 벗고 누워 공식집회가 끝나길 기다린다. 오일 좀 발라주겠어? 벌벌 떨며 난 대표자의 손을 맞잡는다. 신의 손이다. “아! 이건 좀…” 그가 청계천으로 뛰어든다. 자 보시오. 물고기가 뛰어놉니다. 생수가 흐르고 있죠. 증거를 보여줄까요? 물에 빠진 대머리가 가는 눈에 광채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본다. 동원된 관객 중에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래! 자네, 어서 들어와, 이 물을 마셔보게” 난 놀라 손사래 친다. 마침 분수대 물 한 방울이라도 튈까봐 안절부절 하던 차에. 난 죽을 힘껏 달린다. 동서남북으로 내가 달린다.
물이라면 난 질색이다. 오일도 금지다. 단지 그래서 강 살리기 사업도 반대한다. 난 목을 못 쓰는 테너가수고 음악광이고 백전노장 배우다. 나는 팔도강산 물고기도, 물고기의 조상도, 왜 물고기가 생선이 되는지 공룡이 되는지, 새의 근원 따위도 궁금하지 않다. 무조건, 돈! 오늘 공연은 거저먹기다. 이순신장군 동상 옆 단상에 서서 입 꾹 다물고 박수치는 거다. 그건 내 전공, 기량을 가장 뽐낼 수 있는 역할이다. 그러나 내 분장이 지워지면 난 완전 끝장이다. 오일에 녹는 메이크업 제품처럼. 불타는 메이플라이처럼 메이크업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겠다. ‘시민과 함께 하는 정치가의 산책’이 끝나기 직전에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간다. 우레박수를 친다. 펑펑 폭죽이 터지고 하늘에서 지원금이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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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이듬
2001년 계간 『포에지』 가을호에 「욕조 a에서 달리는 욕조 A를 지나」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시집 『별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을 펴냈고, 올 연말에 시집 1권, 산문집 1권을 펴낼 예정이다. 현재 아웃사이더, 소수자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