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김이듬
퍼스트 키스
잠깐이었지만, 살짝 깨문 것 같은 발간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우리는 흰 천을 씌운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날은 그 애의 열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가정부가 가져온 정통 엔초비피자라는 걸 씹으며 콜라를 마신 후였다. 어느 날 친구들과 발야구를 하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 애가 주전자를 받아주며 생일카드를 내밀었다. 제발 와달라고 말했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데다 도도해 보이는 인상에, 수입차를 타고 등교하는 애였다. 난 좀 성가셨지만 왕따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그러겠다고 했다. 집을 찾아가보니 어이없게도, 나만 달랑 초대한 거였고, 처음 보는 음식들을 잔뜩 차려놓은 채 하얀 레이스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부모님은 외국여행을 가셨대나 뭐래나.
이후로 난 그 애와 눈도 안 마주쳤다. 내 주변엔 이상하게 친구하자는 애들이 많았는데 졸업 이후 알고 보니 169센티미터 키에 꽃미남 스타일의 내가 공을 차고 있을 때면 교실 난간에 애들이 빽빽이 매달려 있었다고 했다. 난 내 자질을 더 개발했어야 했다. 공격력을 갖춰 페넌트레이스에 도전하거나 몸으로 때우는 일을 했다면 잘 했을 것이다. 어쭙잖게 글을 쓰다니. 빠른 발로 도루를 해서 그 운동장, 홈으로 돌아간다면 양팔 벌려 그 애를 안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 희게 말라가던 그 소녀의 의자를 자빠뜨리고 입술과 목, 허벅지에 키스를 퍼부을 것이다.
그녀는 눈물을 그쳤을까?
대학시절 처음 한 아르바이트는 과외교사 일이었다. 아는 선생의 친척 딸에게 격주로 토요일 저녁부터 자정 무렵까지 언어영역을 가르쳤다. 그 친구는 학교 이과 반 전체에서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었다. 별로 가르칠 게 없었다. “선생님! 왜 울어요?” 난 재수 없는 눈병 때문일 거라고 대답했다. 순간 안대를 올리더니 손가락으로 내 눈을 쓱쓱 문질렀다. 그리곤 그 손가락을 조심스레 제 눈동자에 갖다 댔다. “눈병이 옮으면 학교에 안 갈 수 있겠죠?” 디데이 백오일이라는 영문과 숫자가 벽에 붙어 있었다.
헐레벌떡 그 애 집으로 갔는데, 그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부모들은 언짢은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마치기 전에, 쉭쉭 엘리베이터가 에스프레소 기계의 커피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검은 액체처럼 스르르 그 친구가 들어왔다. “선생님! 왜 울어요? 오늘따라 왜들 울고 난리예요? 급식소 아줌마도 울고 야자시간에 우리 반 애들 모두 울더니, 버스 정류소에 사람들도 울고 있더라고요. 버스에서도 다들 울어대서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네.”
그만 와도 좋다는 말씀과 함께 봉투를 받았다. 그 애 엄마가 직접 내가 사는 반지하방에 찾아오셔서 주고 가셨다. 그 친군 입시를 포기하고 멀리 간다고 했다. 거기가 외국인지 병원인지 묻지 못했다. 난 그 친구를 석 달여 알아왔지만 걔를 잘 몰랐다. 단지 ‘이 푸’라는 이탈리아 대중가수는 별로라고 말했고 틈틈이 열심히 공부하라는 쓸데없는 말만 했다. 내가 그 친구에게 내 속눈썹과 고름을 주지 않았다면 그 친구는 그런 눈동자로 세상을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람을 너무 깊숙이 보고 이해하려 들면 자기의 울음소리로 심신이 곪는다.
사진처럼 웃어 봐
이 여자는 또 토한다. 변기를 부여잡고. 아 더러워. 오늘로 다섯 번째 만나 온천동에서 온천을 했고 낙지볶음 전문점에서 낙지볶음을 먹었다. 공기밥을 시키며 난 말한다. “엄마는 나한테 한 번도 밥해준 적 없지. 알아요?” 여자의 들고 있던 숟가락이 달달 떨린다. “아니, 엄마라고 꼭 밥을 해줘야 한다는 말은 아냐. 그냥 그랬다고요. 낳아준 게 어딘데…” 내가 횡설수설하는 사이, 여자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야! 너, 고작 이거 사주고 어디서 생색이니? 나 참 더러워서, 지금 내가 먹은 거 다 뱉어낼 거다.”
여자는 같이 다니기 민망할 정도로 낡아버린 코트를 입고 갈색 구두를 신었다. 몇 해 전 처음 만나 지하철 입구에서 억지로 사 신긴 구두였다. 신발을 선물하면 도망간다는 속설을 모르던 때였다. 그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모른다. 솔직히 그리워하긴 했는지도 알 수 없다. 틀림없는 건 날 참혹하게 다시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내가 선생답지 못한 야한 화장을 한 채 술 담배 냄새를 풍기며 쓰러졌을 때, 그녀는 배신감에 활활 타는 눈으로 째려보다가 길거리에 방치하고 멀어져갔다. “어이. 아줌마!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날 버리는 거요?” 난 밤거리의 취객처럼 소리쳤지만 뒤도 안 돌아봤다. 처음 만나는 날이었는데, 꼬락서니 대충 정돈하고 가서 우아하고 지적인 느낌을 줬어야 했다.
이 여자가 내 시집을 받아 쥐더니, 아무 말도 안 한다. 무릎 위에 엎어놓는다.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는 표사 글을 훑는 것 같다. “오, 오 하나님!” 여자가 눈물을 흘린다. 제기랄, 지하철 안이라 대략난감하다. 내 시는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계열이다. 도대체 성스러운 게, 아름다운 게 뭔가? 시는 시다. 거두절미하고 엄마는 엄마다. 엄마의 생을 산다. 영도다리를 건너기 전에 여자가 내 손을 잡는다. 난 이 여자 사는 방도 모르고 옮긴 교회도 모르는데, 전화번호라도 바꿔버리면? 처음 맞잡은 손은 앙상하고 축축하다. 내 머릿속은 빈소가 된다. 이 여자는 사진처럼 웃는다. “그래, 수고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성경을 읽어야지. 그 책이 가장 좋은 시 텍스트란다. 널 위해 평생 밤낮으로 기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구나. 자주 연락하지 말고 …” 흩어진 그녀의 가방엔 성경과 내 연락처가 적힌 편지가 있었다 한다.
딸 하나 전도 못해 대단히 자존심을 다쳤던 무능한 전도사. 과민한 결벽증에 시달렸던 독거노인, 그녀가 내 첫 번째 엄마다. 영원한 적수이자 연인, 기타 등등이다. 여고시절 문예 부장이었다던 그 말이 뻥이 아니라면, 그녀와 난 피를 나눈 블러드시스터즈 2인 동인이다. 둘이며 하나다. 난 혼자 처참하게 시를 쓰는 게 아니었는데, 종종 잊어버린다. 돌대가리. 엄마한테 신을 사주는 게 아니었다. 엄마의 신이 날 구원하지 않아서 감사한다. 난 그녀가 웃을 수 있는 시를 쓰지 않았다. 앞으로도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자포자기 패배감의 총구가 이 밤도 나를 겨눈다. 탕탕, 내 몸은 더 많은 구멍을 원하고 그 안에 그녀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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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이듬
2001년 계간 『포에지』 가을호에 「욕조 a에서 달리는 욕조 A를 지나」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시집 『별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을 펴냈고, 올 연말에 시집 1권, 산문집 1권을 펴낼 예정이다. 현재 아웃사이더, 소수자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