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자의 성
조연호
부인이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산문과 운문을 생의 모든 부분에서 반복했다
회색이 만든 아름답고 슬픈 시대
내가 그대에게 하루에 하나씩의 문밖을 던지던 것에 아직 방문객이 없던 시절
그늘을 잃었고 그날의 그림자를 모두 잃었다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하지만 자고 나면 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를 알 수 없게 되리라
멀리서 들려오는 타인의 쇼팽에게 먼지를 묻혀주는 밤
보다 더 굵고 긴 악몽에
향기나는 콘돔을 씌우고
아버지와 하녀 사이에 도착하기 전에 비는 죽는다
이 계절에 구름을 위쪽 단추까지 채우고 또 이 계절에
우린 젖은 우리를 풍향계 앞에 꺼내놓고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운 없는 어린잎이 현관문을 두드렸어 그런 뒤적이는 소리들이
내 감정의 일부를 성공적으로 부숴놓곤 했다
창에 돌을 던져준 건 고맙지만 창들은 예전부터 깨진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양손 곁에 놓여 있는 더러운 주말은 그렇다면 즐겁다
연금술의 치유력으로 겨울잠을 한 조도(照度) 포기한다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쓸쓸하게 녹아 없어진 초의 개수를 매일 밤 처음부터 다시 외워보며
그대도 나처럼 신비한 불결을 향해 잠들어라
『천문』에서 전재 (조연호, 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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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조연호
나는 시를 쓰고 있는 사람이다. 시인이라는 자각이 시 작품이라는 귀납적 성과를 못 따라가기에 생기는 것이 작가적 양심의 위치라면, 내가 시인이라는 자각은 부끄럽게도 아직 많지 없다. 그런 까닭에 시에 대해 경외할 수 있었다. 많은 부분 나에 대해 역겹지만, 하나 다행한 일은 전통적인 걸 중시하고 옛것들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 정도? 그런 태도가 기품과 격식을 낳으리라고 염원하고 있지만, 운명을 비극의 자기 희열로 반성한 그리스 사람들처럼 나는 결코 서정적 합창에서 비극으로 건너오는 모험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위치를 이해하려고 자기 운명과 교역하는 인간상만큼은 열쇠로 기능하는 것이지, 그 열쇠에 맞는 구멍을 가진 문으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문은 영구히 파멸되었기에. 그래서 남의 영광이 나의 몰락 단계가 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괴로우면서도 엿볼 용기를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시적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