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구를 찾으러 갑니다
이영주
탁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다른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에 날렸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리, 와르르한 소리. 처마 밑에서는 고양이가 울다 가고 혼자 남은 탁자는 깨진 글자를 계속 받치고 있네요. 시간이 흐르면 발생은 지워지고 결과만 남을 거예요. 파헤쳐진 쓰레기봉투에 선명하게 남은 고양이 울음. 다른 곳에 서서 우리는 길게 찢어진 울음을 각자의 수정구 속에 넣어둡니다. 한 번도 고양이가 우는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다만 밤의 거처가 머물고 있는 느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글자를 입에 물고 뒤집힌 하늘로 올라가려는 사람들. 탁자 밑으로 들어가 구부리고 앉을 때만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밤과 낮이 서로에게 다가가 인사하는 아주 낮은 곳에서 겨우 표정을 만져볼 수 있습니다. 다족류 짐승은 그 많은 발을 움직여 바닥에서 바닥으로 이동합니다. 모두가 사라지고 탁자만 남은 밤에는 비가 오고, 바람에 날리는 그대의 수정구를 찾아 떠납니다. 나는 신발을 벗습니다. 다족의 글자들은 어떤 울음의 형태로 담겨 있을까요. 그 안에 혹시 내가 있을까요.
-------------------------------
작가 소개
이영주
“오늘내일 한다. 두번째 시집이 나오는 시간. 만삭과 같네. 오늘내일. 시를 써서 그나마 이런 사람이 되었다. 시를 쓰지 않았으면 어떤 순간으로 흩어졌을까? 유기체가 될 수 있었다, 시를 써서. 그러니까 그 전에는 규정할 수 없는 골목이었다, 내가. 한밤, 썩은 고기 냄새가 풍기는 어두운 골목에서 나는 늘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제 좀 악문 이를 버리고 입술을 내밀어 보려고 한다, 나는. 쭈욱 내민 입술 말야.”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