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에는 모두 친해진다
이영주
우리가 조금씩 다가갈수록 별은 사라진다. 우리가 서로에게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각 밑에 있던 수정구들이 깨진다.
단 한 번의 접촉이 세계를 나눈다. 친하다는 것은 서로에게 얇은 단면이 되기 위해 별처럼 폭발하는 것일까.
나는 여름에 변하지 않는 자. 열기에 갇혀 있어.
웅덩이에 얼굴을 대고 천천히 잠기면 진흙이 머리를 덮으면서 올라온다. 땅이 하늘이 되는 순간, 그제야 하늘의 눈빛을 만져 본다.
털 빠진 개들이 주변을 뱅뱅 도는 시간. 진흙 아래서 나는 변하지 않으려고 붉게 번지는 피의 무늬를 쓰다듬는다.
모두가 뜨거운 순간. 갑자기 별의 안쪽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친해진다.
-----------------------------
작가 소개
이영주
“오늘내일 한다. 두번째 시집이 나오는 시간. 만삭과 같네. 오늘내일. 시를 써서 그나마 이런 사람이 되었다. 시를 쓰지 않았으면 어떤 순간으로 흩어졌을까? 유기체가 될 수 있었다, 시를 써서. 그러니까 그 전에는 규정할 수 없는 골목이었다, 내가. 한밤, 썩은 고기 냄새가 풍기는 어두운 골목에서 나는 늘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제 좀 악문 이를 버리고 입술을 내밀어 보려고 한다, 나는. 쭈욱 내민 입술 말야.”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