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러 간다
김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나의 만남은 지속적이고 끈질기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문학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겠는가.
우리는 시적으로 충분히 지쳤다. 둘 사이에
어떤 시도 오고 가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다. 그 얼굴이 모여서
시를 얘기하고 충분히 억울해하고 짜증을 부리고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사람이 더 황폐해진
사람을 만나러 간다. 시를 얘기하려고
오늘은 내 주머니 사정을 들먹이고
내일은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꽝꽝 두드리고
망치나 해머 뭐 이런 것들로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상황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들먹이는
너를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너 또한 내일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꺼지지 않는 불씨를
확인하려고 네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만나는 사람.
거기서 시가 오는가? 거기서 시를 배우는가?
우리의 만남이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시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억울할 정도로
길고 오래간다. 꺼지지 않는 이 불씨가
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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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언
1992년 공대에 들어갔지만, 공학도가 될 수 없었던 아웃사이더는 결국 시인이 되었다. 1998년 <시와사상>을 통해서다.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냈으며 두 권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숨쉬는 무덤』(2003)과 『거인』(2005). 나머지 한 권(『소설을 쓰자』)은 작년에 나와서 그럭저럭 읽히고 있다. 제목처럼 소설을 쓸 각오는 아직 못하고 있다. 다만, 이다음 시집을 채울 시의 골격을 암중모색 중이다. 발표는 많이 하고 있지만, 상상의 틀을 세우지 못한 시는 아무리 발표해도 허기진 얼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민이다. 시의 골격이자 상상의 틀을 다시 세우는 일에 대해, 한편으로 하루가 다르게 허물어져 가는 얼굴에 대해 또 무엇을 쓸까, 세우면서 허물어져 가는 것의 극적인 상황이 한 편 한 편 시로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계속 쓴다. 그 고민과 더듬거림과 불확실한 어떤 고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