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산책
김언
이 시간이면 그 도시도 전혀 다른 새벽을 보여준다.
나의 발걸음도 수상하다. 아무도 없을 때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그의 눈에 띄면서 나는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
직전의 영혼은 모두 유령이었다.
누가 발견하기 전 나의 걸음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의 보행과 나의 생각과 나의 입김이 그의 눈에서 순간 빛나고
나는 놀란다. 사람이 된 것이다. 아무도 없을 때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에도 없는 나의 보행이 걸어가면서
그를 본다. 멀리서 걸어오는 그를.
한 사람의 윤곽과 어렴풋한 입김을
그 생각을.
멀리서 나를 발견한 그는 가까스로 유령에서 빠져나왔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고 있다. 직전의 나처럼.
<시현실> 2009년 여름호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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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언
1992년 공대에 들어갔지만, 공학도가 될 수 없었던 아웃사이더는 결국 시인이 되었다. 1998년 <시와사상>을 통해서다.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냈으며 두 권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숨쉬는 무덤』(2003)과 『거인』(2005). 나머지 한 권(『소설을 쓰자』)은 작년에 나와서 그럭저럭 읽히고 있다. 제목처럼 소설을 쓸 각오는 아직 못하고 있다. 다만, 이다음 시집을 채울 시의 골격을 암중모색 중이다. 발표는 많이 하고 있지만, 상상의 틀을 세우지 못한 시는 아무리 발표해도 허기진 얼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민이다. 시의 골격이자 상상의 틀을 다시 세우는 일에 대해, 한편으로 하루가 다르게 허물어져 가는 얼굴에 대해 또 무엇을 쓸까, 세우면서 허물어져 가는 것의 극적인 상황이 한 편 한 편 시로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계속 쓴다. 그 고민과 더듬거림과 불확실한 어떤 고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