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자들
문혜진
사하라 사막에서 납치당한 서방 인질들과 복면 쓴 알-카에다 무장 요원들이 알자지라에 의해 전파를 타자, 너 같은 재개발, 헐벗은 벌목들, 탄소개발자, 잡놈으로, 회의적 생계형 변종으로 마감뉴스를 보던 너는 ‘미 이익 어디든 공격 지시’를 외치며 젖가슴을 주물러 대기 시작했지 눈을 가린 인질과 눈만 내 놓은 무장 요원들이 장님들의 섹스처럼 공기 속 냄새와 소리를 집요하게 끌어 모아 팽창할 때, 콜라겐 팩을 붙이고 누워 있던 내 면상은 그러니까 부루카, 무슬림 여성들이 그토록 찢고 싶어 하던 눈만 보이는 위장술로 쌍판을 가렸는데, 너는 폭탄주 냄새를 풍기며, 아들이 빨던 젖퉁이를 철썩철썩 질투하며 육탄 폭격을 가해왔지 고기냄새가 밴 와이셔츠를 찢어줄까 털이 빠진 정강이를 핥아줄까 매일매일 해, 하루도 거르지 말고 내 몸이 닳고 닳을 때까지 치성을 드려줄게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이슬람 무장세력 석방과 몸값지불을 요구할 때, 월요일은 고기 먹는 날, 세상에 완전한 포식자는 없지 살아 있어서 어쩔 수 없음에 대해 돈피 젤라틴, 뻐덕뻐덕한 비계의 효용, 남의 살로 씹고 뜯을 때, 닷새 째 폭우, 닷새 째 폭설, 콜라겐 먹은 내 얼굴에만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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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문혜진
“내가 사는 동네는 꼭 새둥지 같다. 내가 태어나 자란 동네도 매둥지 같아서 사람에게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매의 습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비밀 요새 같은 이 산자락에서 내가 발견한 야산의 고목 아래 물웅덩이에 내린 벚꽃이라든가 옛성곽에 걸린 달빛을 따라 걷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사는 동네에는 까치도 많고 까마귀도 많아서 까치와 까마귀가 같이 운다. 까치와 까마귀가 같이 우는 그런 세상에 산다는 자각보다는 내 방 창가에 가까이 와서 울다 가는 새들의 디테일에 감각을 열고 엿보는 일이 얼마나 저릿한지. 빗 속에 들리는 단비비소리, 눈 내리는 소리, 눈 쌓이는 약한 지붕들이 내는 소리. 다큐적 진경 속을 아이와 거닐면서 인왕제색도가 되었다가 몽유도원도가 되었다가 뜨거운 핫초코가 되었다가… 며칠 전에는 집앞 전신주에 멧비둘기 몇 마리가 미친듯이 울어대어 창문을 열어 보았는데, 폭설속에 올빼미인지 부엉이인지가 목석처럼 앉아있는 게 아닌가. 덩치가 작은 것으로 보아 올빼미 같기도 하고 새끼 부엉이 같기도 한데, 그 보다도 왜 그 시간에 산에서 내려와 남의 둥지를 지옥으로 만들었는지, 못내 궁금하다.” 1998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해 시집 『질 나쁜 연애』, 『검은 표범 여인』을 펴냈다. 2007년 제2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