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흰올빼미
문혜진
그 바다의 모든 의혹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소녀의 눈을 기억한다면
외계에서 이탈한 빛
오로라를 만날 수 있지
창백한 은발에 깊은 초록 눈을 가진
그런 소녀 말이야
흰올빼미의 정적이 흐르는 이마
부유하는 빙하의 고독이 잠시 머문 콧날
달싹일 때마다 깊은 싸이프러스 향이 나는 차가운 입술
그 소녀를 만난다면
가장 추운 나라의 빙판 위에서 맨발로 춤 출거야
대지의 집착을 견디지 못해 분출하는 간헐천
빙하를 삼킨 유황 온천의 넘치는 열기
춤을 추다 녹아 내릴거야
증발할거야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의 여행
나는 물이 아니지
얼음이 아니야
나는 설인도 아니지
눈보라 속에서 발끝을 세우고 춤추는 나는
이탈한 자의 폭포
정지 비행하는 매
재가 섞인 빙산의 에테르
새벽 3시
낙뢰에 영혼이 이탈한 흰올빼미
『검은 표범 여인』에서 전재 (문혜진,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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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문혜진
“내가 사는 동네는 꼭 새둥지 같다. 내가 태어나 자란 동네도 매둥지 같아서 사람에게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매의 습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비밀 요새 같은 이 산자락에서 내가 발견한 야산의 고목 아래 물웅덩이에 내린 벚꽃이라든가 옛성곽에 걸린 달빛을 따라 걷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사는 동네에는 까치도 많고 까마귀도 많아서 까치와 까마귀가 같이 운다. 까치와 까마귀가 같이 우는 그런 세상에 산다는 자각보다는 내 방 창가에 가까이 와서 울다 가는 새들의 디테일에 감각을 열고 엿보는 일이 얼마나 저릿한지. 빗 속에 들리는 단비비소리, 눈 내리는 소리, 눈 쌓이는 약한 지붕들이 내는 소리. 다큐적 진경 속을 아이와 거닐면서 인왕제색도가 되었다가 몽유도원도가 되었다가 뜨거운 핫초코가 되었다가… 며칠 전에는 집앞 전신주에 멧비둘기 몇 마리가 미친듯이 울어대어 창문을 열어 보았는데, 폭설속에 올빼미인지 부엉이인지가 목석처럼 앉아있는 게 아닌가. 덩치가 작은 것으로 보아 올빼미 같기도 하고 새끼 부엉이 같기도 한데, 그 보다도 왜 그 시간에 산에서 내려와 남의 둥지를 지옥으로 만들었는지, 못내 궁금하다.” 1998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해 시집 『질 나쁜 연애』, 『검은 표범 여인』을 펴냈다. 2007년 제2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