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사랑
진은영
만약에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를 위해 시를 써 줄 텐데.
너는 집에 도착할 텐데.
그리하여 네가 발을 씻고
머리와 발가락이 두 벽에 닿은 채 좁은 잠이 든다면,
큰 물방울 담요를 뒤집어쓰고 젖은 잠에 빠진다면,
나는 너의 꿈 속으로 사랑에 불타는 중인 드넓은 성채를 보낼 텐데.
오월의 사과나무꽃 핀 숲, 그 가지들의 겨드랑이를 흔드는 연한 바람을
초콜릿과 박하의 부드러운 망치와 우체통과 기차와
처음 본 시골길을 줄 텐데.
갓 뜯은 술병과 팔랑거리는 흰 날개와
몸의 영원한 피크닉을
그 모든 순간을, 모든 사물이 담긴 한 줄의 시를 써줄 텐데.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일생이 흘러가는 시를 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얼마나! 너는 좋을 텐데.
그녀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큰 빈집이 된 가슴을,
혀 위로 촛농이 떨어지는 밤들을,
이 밤의 민들레 홀씨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만 날아가는 시를
네가 쓰지 않아도 좋을 텐데…
-----------------------
필자 소개
진은영
2000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 『우리는 매일매일』(2008)이 있다. 각별히 좋아하는 철학자들에 대해 책을 쓰기도 했다.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2004), 『니체의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2007)와 같은 책들이다. 최근에는 청소년들과 니체의 철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어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2009)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