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세계 영화사에 ‘다다미 컷’으로 회자되는 그의 카메라 워크는 다다미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본인의 생활세계를 나직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아마도 일본적 삶의 높이가 그러하단 이야기리라. 얼마 전 그의 영화 한 편을 보다가 문득 실존의 높이라는 것에 생각이 가 닿았다.
이와 함께 떠올린 것은 요즘 들어 내게 생긴 묘한 버릇이다. 점심 한 끼를 먹더라도 퍼질러 앉아 먹어야 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의자에 걸치고 먹는 순대국밥이 온전한 국밥이겠냐는 게 내 지론이지만, 내 몸의 보수성만은 왠지 무서웠다. 그러고 보니 내 방 책상이며 의자도 점점 다리가 짧아지고 있던 참이었다. 이것이 내 실존의 높이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일까.
낮아지는 무게중심과 멀어가는 바탕, 이 웃지 못 할 패착을 떠올리며 식당을 나서다가 문득 현관에 나동그라진 흰색 줄무늬 하나에 내 시선이 낚이고 말았다. 무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국민 생활의 저변을 묵묵히 담당하고 있는 신발, 곧 삼선 슬리퍼 한 짝이었다.
그래…, 저러하리라!
아래 문자는 ‘삼선이’를 향한 내 우정의 헌사다. 그러니까 이 하루 내 생활의 자그마한 증좌인 셈이다.
낮아서 거룩한 것이 있다
비루해서 아늑한 것이 있다
이념이 생활로 전환되는 곳
초월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곳
바로 그곳 저 삼선에
아로새겨진 불가사의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 거나.
화엄 리얼리즘이라고
저 낮은 형이상학이라고
하여 낮은 꿈을 꿀 수 있었으면
그 꿈을 디딜 수 있었으면
낮아서 거룩한 꿈
비루해서 아늑한 꿈
그러니, 가라, 삼선아!
꾹꾹 땅을 눌러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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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공상철
중국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문화적 자산을 문명사적 지평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몇 분과 함께 『루쉰(魯迅)전집』 한국어판 완역 작업에 임하고 있다. 숭실대학교에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