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여기, 차 세워두시면 안돼유.”
경비원은 귀밑에서부터 검버섯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짙은 감색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푹 들어간 볼살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입가로 경계선이 진하게 그어진, 아주 노인이었다.
“아, 예, 여기 친척이 사는데… 여기서 만나기로 해서요. 좀만 있을 거예요.”
형두가 자동차 브레이크 위에 발을 올려놓은 채 말했다. 형두가 그렇게 재빨리 말을 꾸며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경비원이 밀수꾼의 가방 검사를 하듯 차 안에 있는 우리를 한번 쓰윽 훑었다. 형두와 한나 언니와 나였다. 우리는 호흡이 잘 맞는 은행강도처럼 서로의 눈짓을 교환했다. 경비원을 향해 쌩긋하고 미소를 날려주었다. 한나 언니는 경비원을 보면서 소풍 나온 어린애처럼 큰 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민망한 웃음이었다. 형두와 나는 한나 언니를 째려봤다. 경비원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한나 언니가 갑자기 웃음을 딱 멈추었다.
“야, 배고파 죽겠어.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한나 언니가 투덜대듯 말했다. 언제나 먹는 타령이다. 차 안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어보였다. 기껏 형두의 애마, 구식 아반떼였다.
나도 배가 고팠다. 소의 항문, 성기, 내장, 십이지장, 눈알, 다 들어간 햄버거라도 먹고 싶었다. 햄버거라도 사올까, 내가 말했다. 형두는 한나 언니와 나를 힐끗 보더니 잠깐 있어봐, 했다. 조수석 쪽 서랍을 열고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졸음을 잊기 위한 목사탕이나 껌 정도가 다 일 것 같았다. 형두가 찾아낸 것은 차 시트 뒤쪽 주머니에 불룩하게 담긴 과자봉지였다.
자, 이거 하면서 형두가 내민 것은 뼈다귀 모양으로 생긴 조그만 비스킷이었다. 아이디어가 독특한데? 하면서 한나 언니와 나는 비스킷을 바삭거리며 씹었다. 응, 맛도 괜찮고… 그러자 형두는 으응, 먹을 만할 거야… 했다. 이거 어디서 났어? 너 이런 비스킷 종류 싫어하잖아, 내가 말했다. 형두는 으응… 했다. 형두는 다시 으응, 하고 뜸을 들이더니 우리 동물병원에서 애완견한테 주는 먹이야. 뭐어? 내가 놀라며 인상을 쓰자 형두는, 야아, 괜찮아. 사람도 먹어도 돼… 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나 언니는 그 말을 들었는지 어떻게 된 건지 상관이 없는 듯했다. 입을 열심히 우적댔다. 벌써 손이 비스킷 과자 봉지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참, 이럴 땐 언니와 나를 연결한 탯줄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싶다.
주상도의 아파트는 우리 아파트 산 뒤쪽 고급주택가 촌에 있었다. 일요일 한낮을 선택한 것은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바람이 꽤나 쌀쌀했다. 하지만 유모차까지 끌고 나온 가족도 보였다. 빨강 털모자를 쓴 초등학생 여자애가 자기의 아버지쯤 되는 사내와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털모자가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며 공을 쳤다. 기다렸다는 듯 가랑잎이 우수수하고 공원 보도블록으로 떨어졌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근데 정말, 이 시간에 산책을 한단 말이지?”
나는 사실을 확인하는 형사계 반장처럼 형두를 쳐다봤다. 형두는 며칠 잠을 못 잔 형사처럼 시큰둥하게 그렇다니까,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어떻게 납치란 걸 한단 말인가. 형두는 자기한테 다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졸린 듯 눈을 감았다. 베개 밑에 권총을 두고 자는 서부 개척 시대 미국인처럼.
형두가 운전석에서 눈을 좀 붙여야겠다 하고 잠이 들자 한나 언니도 하품을 계속 해댔다. 한나 언니는 개 비스킷을 잔뜩 먹고 포만감에 겨워하고 있었다. 언니가 낮잠 잘 시간, 오후 2시 35분이었다.
사실 잠복근무를 위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내적 외적 저항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해야 한다. 일테면 씻는 문제, 속옷 양말 등을 갈아입는 것, 먹을 것과 화장실에 가는 일까지. 교대로 잠을 자면서 규칙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대상을 감시하는 것 등 말이다. 그건 인간적 집착의 힘을 믿거나 아니면 어떤 신념과 사명감이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강만봉의 일로 독수리 삼형제는 뭔가 대응을 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처음 강만봉이 번쩍이는 잭나이프를 들어올렸을 때 소장의 뒷조사를 하는 일이 팬티를 입고 똥을 누는 일처럼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불가능하다 해서 그만둘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주상도의 휴일 일정을 말한 것은 형두였다. 그때를 노려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한나 언니였고 잠복을 하자고 한 건 나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이 있다고 말한 것은 형두였고 그 정도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한나 언니였다. 나는, 나도 그냥 있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잠복은 생각보다 집중력과 지속력을 요구했다. 지루했다. 처음에 우리 셋은 잔뜩 부풀어 있었다. 마치 뭔가 대단한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첩보원처럼. 작전을 점검했다. 체크했다. 그러나 시간은 점점 따분해졌다. 형두가 프로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나 언니가 닭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은평 시장 욕쟁이 할매집이 제일 맛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럴 때를 위해 선글라스라도 하나 장만했어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차츰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졌다. 그러자 형두와 한나 언니는 침묵을 선택했다. 순수한 의미의 침묵, 잠에 빠져든 것이다.
늦가을의 햇빛은 노인의 축 쳐진 거시기처럼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환했다. 차안을 잘 비춰주고 있었다. 형두의 아반떼 안에는 평화로운 잠이 깃들었다.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유모차에 실려 잠든 어린애처럼. 잠복을 한다는 생각조차 잊은 듯했다.
나는 뭔가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잠에서 깨고 나서야 내가 잠이 든 것을 알았다. 뭐야? 어둠속에 갑자기 눈을 뜬 자객처럼 후닥닥 잠에서 깼다. 부스럭거린 것은 형두였다.
“뭐야? 너…?”
형두는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으응… 잠복근무하려면 필요할 것 같아서…”
하고는 갈색 양말을 벗더니 감색 양말을 갈아 신기 시작했다. 형두는 잠복근무를 위해 양말을 챙겨왔던 거였다. 정말 할 거 다했다.
그때였다.
“야, 저기!”
형두가 양말을 갈아 신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상도와 그의 아내임 직한 여자였다. 주상도가 강아지를 안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 뒤에 그 아내가 뒤따랐다. 여자는 다리를 조금씩 절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였다. 강아지는 머리에 핀을 꽂고 있었다. 암컷 같았다. 강아지는 주상도의 팔에 아기처럼 안겨 있었다. 주상도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뭐라고 뭐라고 말했다. 강아지는 주상도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는 듯했다.
“야, 알지?” 형두가 차 유리창 아래로 머리를 숙이고 낮게 말했다. 형두가 언니를 깨웠다. 언니가 기지개를 켰다. 야, 쉿! 조용하란 말야. 낮고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형두가 말했다. 아반떼는 공원 뒤쪽 숲길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 셋은 차에서 조심스럽게 내렸다.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었다. 은행나무 숲 뒤였다.
주상도가 강아지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강아지는 방문을 뛰쳐나가는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주상도와 그의 아내는 막 뛰어노는 어린 자식을 보듯 강아지를 바라봤다. 그들은 행복해보였다.
형두가 내게 눈짓을 했다. 나는 준비한 것을 꺼냈다. 개들이 좋아하는 소고기향 사료에 다 시저와 계란가루를 뿌린 거였다. 우리는 개를 납치하기 위해서 개를 유인하는 게 좋을까 개 주인을 유인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우리는 둘 다를 선택하기로 했다. 한나 언니가 주상도 부부에게로 다가가 길을 묻기로 했다. 나와 형두는 개 쪽을 맡기로 했다. 한나 언니가 주상도 부부에게 다가갔다. 언니는 시골에서 먼 친척을 찾아 올라온 시골 조카역이었다. 나는 개 사료를 담은 그릇을 들고 풀밭 위를 조심해서 걸었다.
털이 부드럽게 온몸 가득 난 개였다. 개는 커다란 눈망울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순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인생에서 미소만큼 따뜻한 위선이 있을까. 그래도 그녀는 다가오지 않았다. 먹을 것을 보아도. 생각보다 신중했다. 먹을 것만큼 유혹적인 속임수가 없다는 걸 이미 학습한 듯해보였다.
나는 몸을 잔뜩 숙였다. 살금살금 개에게 다가갔다. 개는 내가 다가올 때까지 눈빛을 껌뻑이며 가만히 있었다. 풀숲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때였다. “미나야, 미나야.” 주상도가 누군가를 불렀다. 개가 뒤를 돌아봤다. 미나?
진땀이 나려 했다.
그때였다. 잽싸게 형두가 풀숲에서 뛰어와 개를 포대 안에 집어넣었다. 참, 능숙한 솜씨였다.
미나는 우리 집에 와서 한참을 밥을 먹지 못했다.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뒤로 돌아섰다. 형두가 주는 고가의 사료만 조금씩 입에 댈 뿐이었다. 참, 그놈 곱게도 컸군. 형두는 사료를 주면서 중얼거렸다.
“라사압소란 종이야. 티베트의 왕족들이 키우는 개지. 기품에다 순박함까지 가지고 있어 사람들이 가장 탐을 내는 비싼 종이야. 주인을 전혀 귀찮게 하지 않고 심지어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눈빛까지 가지고 있지. 시가로 아마 몇 백은 갈 걸?”
나는 내게로 다가오는 미나를 발로 찼다. 미나가 깨갱깽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라사압소는 행운을 상징해.”
나는 미나를 더 세게 발로 찼다. 다음에 뒷다리걸기로 목을 누를 생각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자 기품 있는 개는 기품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서서히 뒷걸음질치며 물러갔다.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은은한 기품? 쳇, 주상도에게 애라도 있었다면 애를 납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상도에게 애가 없다는 게 다행이긴 다행이었다.
훔쳐온 이 생명체는 형두에게만 가서 치근덕거렸다. 형두 발 아래 가서 몸을 비볐다. 형두는 ‘은은한 기품’에게 사료를 먹였다. 그건 우리 세 식구가 먹는 한 끼 식사보다 더 비싼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