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강만봉은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두나, 이 행주 물에 삶아 죽일 년아….”
강만봉은 내 뺨을 갈겼다. 나도 잽싸게 강만봉의 뺨을 갈겼다.
“어, 이게?” 강만봉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더니 내 오른 팔목을 잡고 꺾었다. “아, 아, 아프단 말야.” 나는 인대가 늘어난 팔을 잡고 인상을 쓰며 강만봉을 노려봤다. 그리곤 강만봉 얼굴에 침을 뱉었다.
강만봉은 뺨에 묻은 침을 닦으며 희미하게 조소를 던졌다.
“너 주상도 소장님 뒷조사하고 다닌다며?"
강만봉이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돼지기름내 같은 스킨 냄새와 얼굴 피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우리 셋은 민망한 듯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 자신이 뒷조사를 당하고 있었다니.
“너, 아직도 뜨거운 맛을 못 본 것 같아서 내가 그 맛 한번 보여주려고 왔다.”
강만봉은 그렇게 말하고는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번쩍하고 치켜 올렸다.
“이게 뭔지 알아?”
물론 안다. 번쩍거리는 금속. 그것은 나를 회유하기 위한 은화도 아니고 너 자신을 알라는 뜻에서 손거울도 아니었다. 그것은 삼중날이 2개 있는 스위스제 맥가이버 잭나이프였다. 강만봉은 눈알을 희번덕거렸다. 눈동자에 흰자위가 그득하도록 힘을 준대도 저렇게까지 멍청한 표정은 없을 듯했다.
“주상도 소장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 줄 알아? 카이스트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 MIT 수재, 전기공학 쪽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이자 실력자야. 네 까짓 게 쨉이라도 돼? 너 같은 년 뭐 뻔해. 지적이라고 잘난 체 하면서 까불지만 벗겨놓으면 다 똑같아. 유식한 척하는 년들 똥구녕을 내 모를 줄 알고? 유식한 척하지만 돈과 섹스밖에 모르지. 나도 S대 나온 년들 몇 데리고 놀아봤어. 그년들도 다 똑같더라고. 돈 갖다 주고 밤에 세게 박아주면 팍 가는 거 다 똑같아. 여자란 그저 그거 할 때 엉덩이 잘 돌려주고 자식 쑥쑥 낳아주면 다야. 연구소 년들 논문 한 편 더 쓸려고 그러는데… 흥, 지랄하고 자빠졌어~ 논문 한 편 쓸 바에야 미장원 한 번 더 가는 게 훨씬 낫지. 연구소에 잠깐 있다 시집이나 가면 되는 거 아냐?”
‘웃기고 있네.’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그러나, 어쩐다. 오늘은 내가 그런 설교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딴 볼 일로 왔는데… 난 무식한 놈이어서 이런 방법밖에 몰라.” 하면서 강만봉은 잭나이프를 한번 빙글 돌렸다.
나는 눈에 힘을 주며 강만봉을 노려봤다.
“네 년이 소장님 사모님한테 말도 안 되는 전화질을 해댔다고. 참, 네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지. 미친년이 지금 무슨 육갑을 하는 거야? 네가 소장님을 꼬시고 별 짓을 다해놓고 지금 와서 무슨 딴 소리야, 딴소리가… 설사 소장님께서 네 년한테 한번 하자고 했다 하자. 그럼 영광인줄 알아야지.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께서 그런 은혜를 베풀겠다는데…. 직장상사가 한번 하자고 하면 하고 그러는 거야. 그게 상윤리고 그게 직장 윤리야. 멸치대가리 같은 년아… 사모님 봐. 세계적인 논문을 내고도 결혼하고 소장님 잘 모시고 얼마나 훌륭하게 내조를 잘하고 사시는데… 여자란 자고로 많이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살아야 하는 거야. 이 년아…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소장님 뒷조사를 하고 다녀? 은혜를 원수로 갚아? 네가 뒷조사 한다는 거 알고 사모님이 지금 거의 혼수상태야!… 난 네 년한테 매너 있게 잘해주는 젠틀한 체하는 먹물들하고는 거리가 멀거든. 너 같은 년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정도는 알고 있단 말이지.” 강만봉의 더러운 침이 튀었다.
“…” 나는 지지 않고 강만봉을 노려봤다.
“오늘 네 오른손 검지 하나 나한테 바쳐야겠다…”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만봉을 봤다. 강만봉은 일본 사극의 사무라이처럼 가늘게 찢어진 눈에 힘을 주면서 비열하게 웃었다.
손가락이라니. 아무리 여자를 ‘졸’로 보고 자기보스를 하늘처럼 모시는 ‘깍두기’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미쳤어? 네가 뭔데….” 나는 악을 쓰듯 말했다.
“소장님께 약속했거든. 네 손가락 하나 가져가겠다고. 소장님이 네 몸을 못 가질 바에 손가락 하나쯤은 괜찮겠지?” 그러고는 잭나이프를 다시 한번 빙글 하고 돌렸다. 번쩍 빛이 났다. 잘 갈린 칼이었다. 주인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칼이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삶의 방식 외에 아주 많은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쯤은 안다. 무모하고 어처구니없더라도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 말이다.
예를 들면 일 년에 여자 팬티를 삼백 장이나 훔치는 성도착증 환자나 부하가 말을 안 듣는다고 자신의 군화밑창을 혀로 핥으라고 명령하는 군대 상사나 창녀의 종아리에 자기이름을 담뱃불로 지지는 양아치 같은 놈팡이들 말이다.
그러나 나이가 나보다 많은 남자라는 이유로 면전에다 “멸치 같은 년” 혹은 “멸치 대가리 같은 년”이란 말을 함부로 해대고 그것도 모자라 어설프게나마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는 자존심은 다 어디에 엿 바꿔 먹었는지 오직 윗선과 연줄이 닿을 상관 비위 맞추는 데 남은 목숨 다하고 있는지. 정말 악어와 도마뱀을 접붙여도 저런 놈은 안 태어날 것 같았다.
그리고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 말은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주상도가 자신은 어떤 잘못도 없는데 고통만 당했다고 우기는 것은 사랑한 것이 무슨 죄냐고 우겨대는 미성년자 강간범이나 마찬가지다. 장기 성기 다 파열시켜놓고 사랑해서 한 짓이라고 하는 그런 말, 그런 말, 하면 됩니까? ‘사랑’이 무슨 죕니까? 모든 혐의를 ‘사랑’에다 다 갖다 붙이게. 아무 죄 없는 ‘사랑’, 함부로 끌고 들어가지 마세요! 나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의 고통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고통을 막 떠들고 자랑한다. 여보게, 지나가는 나그네야. 이내 말 한번 들어보소. 이내 고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고 침 튀기며 하소연하고 통곡하고 울고 짜고 한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다. 고통은 저울로 잴 수도 줄자로 잴 수도 체중계로 잴 수도 없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울고 짜고 다 말하고 나서 체중계 위로 올라가 보고 어머, 고통 다이어트에 성공했어. 역시 고통 다이어트엔 수다가 최고야…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누구누구 고통이 최고일까요? 하고 전국 고통 자랑 대회를 열어, 저, 있잖아요. 내 고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요, 얼마나 힘이 세고 튼튼한지 어느 천하장사도 들어 올리지 못 한답니다. 정말 대단한 놈이지요. 튼튼한 이빨에 다 뭐든 게걸스럽게 먹어대질 않나. 냉장고, 소파, 침대, 심지어 내 눈알까지 먹으려 든다니까요. 우리 집에 남아날 게 없을 정도랍니다. 한편 이런 고통이 나와 함께 있어 내 인생이 외롭지 않다는 걸 느끼곤 해요. 우리 고통 참 대단한 놈이죠? 하면서 대회 참가자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씩 자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통이란 놈의 목덜미를 살살 만져주면서 말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모여든 고통 자랑 참가자들의 고통을 계량화해서 1등, 2등, 3등을 뽑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고통은 계량화해서 보여줄 수 없다는 것. 단지 그것이 고통이 제도화될 수 없는 안타까운 이유다.
여하간 이두나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강만봉은 보스에 대한 충성을 내 손가락으로 증명하려 한다. 뭔가 사악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말도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빳빳하게 굳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눈을 부릅떴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두목은 손가락 하나로 네가 저지른 죄를 다 없었던 걸로 해주마. 다시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테니 다음엔 실수 없도록! 그렇게 은혜를 베풀려 한지도 모른다. 변절자를 소리 소문 없이 없애는 것보단 인간적인 방법인지 모른다.
그러나 보스가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강만봉은 단순히 나를 겁주고 싶은지 모른다. 물론 그는 남성 사이 의리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밥통이고 보스를 위해 누군가의 뒷목에 맥주병을 박을 준비가 되어 있는 쇠대가리다. 하지만 보스가 이런 일까지 시켰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충성심을 오버하면서 실험하고 있다.
나는 인대가 늘어난 오른팔을 슬그머니 들어 올려봤다. 여전히 욱신거리고 땡겼다. 하필 이럴 때 인대까지 늘어나서. 내 원 참.
심장이 말할 수 없이 뛴다. 나는 겁이 질려 있는 게 분명했다.
천천히 검지를 들어 올려보았다. 검지도 놀랐는지 창백해져 있었다. 천천히 강만봉을 올려다봤다. 형두와 한나 언니를 봤다. 형두와 한나 언니는 마치 두나야, 너 하나만 희생하면 우리 다 무사하니까… 어쩔 수 없지 않겠니?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배신자들… 조금도 나를 구해줄 추호의 뜻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는 이두나가 아닌가.
“그래도 네 얼굴에 칼자국 하나 내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시집은 가야 될 거 아냐? 더 늦기 전에…”
강만봉은 킬킬 웃으며 칼을 들고 서서히 다가왔다. 나는 일어나 점점 뒤로 물러섰다.
‘강만봉 씨,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정신 차리세요.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따위의 고상한 설득은 이미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끼야! 조금만 가까이 와 봐. 나도 그냥 안 있겠어!”
나는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뭘로 가만있지 않을지 머릿속이 하얗기만 했다. 나는 거실 간이의자를 밀어뜨렸다. 일인용 소파를 넘어뜨렸다. 서민아파트 거실은 별로 넓지도 크지도 않았다. 몇 걸음만 뒤로 가면 벽이었다.
형두와 한나 언니가 강만봉의 뒤쪽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도대체 한나 언니는 뭐란 말인가? 태껸 사범이란 자가 무공으로 사내 하나 정도 감당을 못 한단 말인가. 십 대 일도 아니고 십팔 대 일도 아니고 일대일인데 말이다.
평소 때 언니는 늘 말했다. 우주는 하늘과 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기’로 연결되어 있느니라. 하며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했다. 활갯짓을 하던 그 손놀림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야, 태껸은 상대를 해치는 무술이 아니야. 옛 법이란 게 있긴 하지만. 태껸의 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이긴다는 거야.” 한나 언니는 나중에 내게 이렇게 볼멘소리로 말할 게 뻔했다.
나는 뒤로 물러나면서 탁자 위에 있던 꽃병을 강만봉에게 던졌다. 한나 언니가 무척 아끼는 크리스털 꽃병이었다.
강만봉은 잽싸게 피했다.
꽃병은 핑크색 벽지에 부딪쳐 쨍그랑 하고 깨졌다. 강만봉의 인상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던지기 선수처럼 계속 던졌다.
두루마리 휴지, 나무 액자, 헝겁 인형, 쿠션, 월간 잡지, 신문… 강만봉의 치명상과는 조금도 상관이 없을 듯한 물건들. 형두와 언니가 아끼는 신혼살림들이었다.
갑자기 베란다 쪽에 형두가 아끼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녹색 생명체가 생각났다. 화분에 담겨 있는 그것을 형두는 ‘사랑이’라고 불렀다. 개 이름은 아니었다. 녹색 생명체는 뾰족한 잎사귀들을 대기를 향해 펼치고 있는데 마치 제 성기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드러내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능청스러웠다.
신혼여행을 갈 때 아파트가 빈다고 나보고 와서 물을 주라고 부탁했던 그 화초였다.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마음대로 꺼내 먹어도 돼.”라고 했다. 화초에 물을 주는 임무를 다 하기 위해 아파트에 가보니 그 말을 믿을 수 있었다. 냉장고에는 먹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생수통과 굳이 둘 곳이 없어 들어앉아 있는 라면과 햇반이 다였다.
나는 순간 형두가 신혼여행을 가면서까지 부탁한 녹색 생명체를 생각했다. 그러나 화분을 던지면 형두는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게 뻔했다. 어쩌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강만봉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티 탁자 위 손끝에 작은 금속이 만져졌다.
마지막인 듯 손에 잡힌 작은 금속을 강만봉을 향해 던졌다.
손톱깎이였다. 나와 한나 언니가 거실에서 맨날 깎는 손톱깎이.
강만봉을 맞혔다.
강만봉의 이마에 피가 흘렀다.
그는 이마의 피를 만져보더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더니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이번엔 손가락이 아니라 내 심장이라도 찌를 태세였다. 그가 굳이 찌르지 않아도 나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런 순간은 태어나서 처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