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아크릴 형광 간판으로 조잡하게 빛을 뿜어내는 모텔에 들어갈 순 없다. 우리 나이 정도 되면 안다. 약속 장소를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 맥도날드로 정한다거나 구식 아반떼 정도를 몰고 나타나는 남자면 더 이상 만나기 싫어진다. 전철역 앞에서 만난다거나 겨울철 붕어빵이나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사먹는 것은 십대, 이십대 낭만으로 이미 졸업한 일이다.
나는 호텔식 구조 완비라고 쓰여 있는 모텔 앞에 섰다. 사성급 호텔까지는 아니지만 호텔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 모텔에서, 낭만적 사랑을 흉내 낼만한 것처럼 보였다.
모텔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은 어두웠다. 침묵이 두터운 벽처럼 놓여 있었다. 나와 건형은 갑자기 어색한 사이처럼 한참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자 건형이 슬리퍼를 신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오락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출연자들이 깔깔대고 웃자 자동연발기관총같이 침묵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소음 안에서 비로소 안심이라도 되는 듯. 건형은 나를 돌아보며 약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안았다. 건형의 품은 옛날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100사이즈. 딱 그대로였다. 예전 건형의 싱글 침대에 같이 누워있던 적이 있었다. 둘은 서툴게 서로를 더듬다 밤을 새곤 했다.
오른손으로 내 가슴을 만졌다. 따뜻한 손이었다.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갔다. 벌써 몸이 뜨거워지려 했다. 긴장해야 한다. 나는 좀더 여성스러운 스타일로 보이려 애썼다. 부끄러운 듯 몸을 살짝 비틀었다. 건형이 나를 안고 있는 팔에 더 힘을 주었다. 미끌거리는 물고기를 그러잡듯.
다시 약간의 버둥거림이 필요했다.
“부끄러워… 너무 오랜만이어서…” 몸을 떠는 작은 새처럼 내가 속삭였다.
“두나야, 나 미치겠어…” 건형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나를 안은 채 천천히 침대 위로 함께 쓰러졌다. 침대 위에서 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생각해도 반듯하게 잘생긴 이마였다. 그 다음에 뺨에… 광대뼈가 조금 나왔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뺨이다. 그 다음에 입술, 인줄 알았는데 콧등이었다. 날렵하게 뻗은 나의 콧등을 맛보라. 그 다음에 당연히 입술이었다.
나는 입을 살짝 벌렸다. 그의 혀가 잘 들어올 수 있도록. 그는 빨간 성기처럼 혀를 길게 뻗어 내 입속을 골고루 적시고 어루만졌다. 혀는 단단하고 축축하고 부드러웠다. 그는 천천히 스웨터를 벗겼다.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그는 피아노 건반을 조심스럽게 짚어갔다. 유리잔을 조심스레 옮기는 손길과도 같았다. 치마 지퍼를 풀고 치마를 내렸다. 스타킹을 벗자 그의 손이 내 팬티에 가닿아 있었다. 순간 뇌파 속에 3천 볼트의 전류가 흘렀다. 다급하게 그의 손을 막았다.
팬티, 오늘의 팬티는? 오늘의 팬티가 기억 속에 섬광처럼 떠올랐다.
“아, 이건 내가 할게… 잠깐만…” 나는 어둠 속에서 팬티를 벗었다. 보풀이 인 면 팬티였다.
건형은 샤워하고 나온 내 아랫도리를 번쩍 들어 자신의 목으로 끌고 갔다. 바디 워시로 꼼꼼하게 잘 씻어낸 음부였다. 그는 혀끝으로 살살 애무하기 시작했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혀끝의 감촉. 온몸에 전기가 들어왔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건형이 내 몸을 내려놓자 다음은 내 차례였다. 배턴 터치를 한 다음 선수가 달리기 시작했다. 바게트는 이스트에 잘 부풀어 단단해져 있었다. 나는 커다랗게 부푼 바게트 빵을 덥석 입에 물었다. 건형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비틀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이 건형은 짧은 신음을 뱉었다. 건형은 나를 저지하려 했다. 나는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바게트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최소한 적어도 모텔에 들어오면 예의를 지켜야 한다. 모텔 직원은 들어온 지 1시간도 채 안 되어 나가는 연인을 얼마나 비웃겠는가. 저 정도밖에 안 돼? 하면서.
조금만… 조금만… 바게트를 물고 내가 말했다. 건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내 몸 위로 올라왔다. 모텔 직원이 비웃든 어떻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곧 절정이었다. 시계를 봤다. 1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졸음이 왔다. 섹스 직후 종종 엄습하는 나른함과 슬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