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손진영 과장이 자신에게 온 익명의 메일을 전달해주었다. 전기학계 몇몇 후배와 선배들도 음해성 메일을 받았다고 전화가 왔다. 생성광학 연구소에 있는 선배가 나에 대한 투서가 연구소장 앞으로 왔다는 말을 전해줬다. 월간지 <전기와 생활> 잡지사 기자에게도 메일이 간 모양이었다. 내가 연재하는 글에 대한 노골적인 비방의 글이었다.
아예 날 죽이려고 작정을 했군.
이두나를 죽이기 위해 그는 실제로, 구체적으로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밥을 먹는다. 아내에게 당분간 성실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내를 병원에 데리고 간다. 극진한 간호를 한다.
그리곤 재빨리 피시방으로 달려간다. 프로젝트하면서 알아두었던 연구원들의 주민번호가 적힌 수첩을 꺼낸다. 다른 이의 주민번호를 가지고 수십 개의 메일 계정을 만든다. 그는 가방에서 준비해온 여성용 가발을 쓰고 치마를 입고 스타킹을 신는다. 그는 갑자기 여자가 된다. 어떤 때는 석사학위를 갓 받은 이십대 후반의 여자, 어떤 때는 K대 이두나의 여자후배로. 그는 젊은 여자도 되었다가 늙은 여자도 되었다가 한다. 그는 스스로 여성적인 말,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하는 여성적인 말투에 매료되기까지 한다.
-흠, 이 정도면 소설을 써도 되겠어. 이렇게 거짓말에 능숙하다니. 마치 내가 진짜 여자가 된 기분인 걸?
그러면서 그는 씩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멋도 모르는 피시방 주인은 담배연기 자욱한 어두운 구석에서 사십대 남자가 매일 헤죽헤죽 웃다 심각한 표정을 짓다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짓다 슬픈 표정을 짓다 하면서 메일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거참, 이상한 일일세, 했을지도 모른다.
메일은 전국으로 빠르게 번져갔다. 시속 160킬로미터 뇌신경 세포의 속도로. 그것은 신경세포를 지나 시냅스 간극을 건너 다음 신경으로 넘어가는 데 1초의 천 분의 일 수준도 지나지 않았다. 이두나는 전국적으로 천박하고 못돼 먹은 여자가 되어갔다.
나는 오랑우탄처럼 양 주먹을 쥐고 화난 가슴을 꽝꽝 치고 싶었다. 전화를 끊기 전 주상도 부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이쪽 집안사람들 모두 포악한 사람들이에요. 주상도 소장이 그냥 있지 않을걸.” 그녀는 이죽거리고 있었다. 자기 대신 주꾸미가 복수라도 해줄 거라는 둥… 그런 투였다.
그냥 있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식의 낙서질? 음해성 메일을 전국으로 돌리는 일이었나…참 나이에 맞지 않게 한심하고 저열한 주꾸미였다.
나는 민진과 종로로 향하는 전철 안에 있었다. 사이버 테러 수사본부가 종로구 쪽이었다. 전철 안은 주말이라 만원이었다. 닭장 속의 닭처럼. 꼬꼬댁 하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전철을 빠져나오자 진땀이 흘렀다. 사이버 수사대는 종로경찰서 쪽으로 오다 왼쪽으로 꺾어지는 골목이라 했다.
“저 이거로는 불충분합니다.”
경위는 삼십대 중반의 여자였다. 경관 모자를 쓰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 손에는 주상도가 사람들에게 보낸 음해성 메일이 들려 있었다.
“왜 안 된다는 거예요? 명예훼손이 충분하지 않습니까. 상대에 대한 욕을 해대잖아요.”
“명예훼손이란, 사실을 사실대로 말을 해도 명예훼손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욕은 그냥 친구에게 험담하는 정도의 욕이랄까? 명예훼손으로 걸기엔 너무 약합니다.”
주상도는 우등생 타입이고 섬세하고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적절하게 감정적이면서 치밀하고 냉정하게 이메일을 작성했다. 상대방에게 익명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비방의 방식에 대하여 골몰했다. 박사논문 쓰듯이. 담배연기 자욱하고 어둑어둑한 피시방에서. 피시방의 주인 눈초리를 느끼면서. 그는 대학 수능 논술을 준비하는 대입수험생처럼 열심히 글을 썼다. 누군가를 욕하고 또 욕하는 글을. 정성을 다해 그는 욕을 하고 욕을 했다. 오직 싸움의 방식이 이 자판을 치는 일밖에 없다는 듯.
그의 쟁투의 방식은 사시미칼도 아니고 스패너도 아니었다. 단식농성이나 수면제를 먹고 벌렁 뒤집어지는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일본 합기도인 ‘아이키도’가 아닌 ‘키보도’다. 키보드는 일격필살로 상대의 목을 벨 수 있는 멋진 방법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키보도’는 합기도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상대를 바닥에 내리꽂을 수 있는 무기였다. 뒷담화만큼 위대한 복병은 없다. 잠복해 있다 서서히 번져가는 밤안개처럼. 충분히 상대를 질식사시킬 것이다. 그는 키보드 앞에서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으로 몸을 떨었다. 희열과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전희가 끝나자 서서히 오르가슴에 올랐다. 또다른 권력욕의 확인이었다. 그는 충분히 냉정했지만 충분히 다혈질적이었다.
일테면 그는 이두나가 완벽하게 감정적으로 자신에게 순종해주길 바랬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중에 그를 괴롭힌 것은 이두나와 애인이 되지 못한 쪽박 찬 이 현실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는 상황이었다. 감히 나를 거절해? 그건 순수한 의미에서 분노였다.
나는 내가 들고 간 메일 내용을 다시 찬찬히 읽어갔다. 메일은 충분히 치밀했다. 주꾸미 는 교묘하게 명예훼손을 빠져나가려 했다. 주상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럼 아이피 추적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사이버 수사대에서 그런 거 해줄 수는 있는 거잖아요.” 또박또박 말하는 민진.
“아이피 추적을 한다고 해도 남의 주민번호를 도용해서 한 거라면 그 도용한 사람을 찾는 게 하늘에 별 따기란 말입니다.” 경위가 말했다.
“그럼 어느 피시방인지라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피시방 안에 CCTV에 찍힌 사람을 낱낱이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이두나.
“피시방에서 CCTV 분석하는 일. 그런 일은 강력범죄 아니면 사이버 수사대에서 직접 뛰어들지 않습니다. 강력 사건도 많은데다 그런 일까지 일일이 다 추적할 순 없거든요.”
경위의 말은 논리적이고 분별이 있었다. 논리적이고 분별이 있기에 잔인하게 들렸다. 기대를 갖고 간 민진과 나는 맥이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