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거? 그건 통신비 할인제에 가입하라는 텔레마케터의 전화만큼 무책임하게 들렸다. 누구나 ‘뽀대 나게’ 말한다. 삶과 정면으로 만나면서 살라고, 늘 현재를 사는 거라고. 그러나 그런 말은 지하철 공중화장실 벽에 붙은 ‘오늘의 금언’ 뭐, 이런 것처럼 시시했다. 아니 식은 죽처럼 밍밍했다.
“알다시피 내가 감당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일 따위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세상은 감당할 수 없는 거 투성이라고…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에요.” 나는 약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게. 사랑을 나누고 잡담하고 아기를 가지고… 사실 인간은 두더지나 개미나 비슷한 선택 과정을 겪어. 그런 동물들보다 별로 더 행복해 보이지도 않아. 하지만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슬픔과 불안 분노와 부끄러움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 그리고 슬픔은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만들기도 하지. 슬픔이 생기면 삶이 진해지니까.” 테오가 말했다.
성당 종탑에서 종이 울렸다. 어떤 혼이 공기의 파장으로 번져갔다. 성스럽고 가엾은 혼들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작은할아버지가 쌕쌕 코를 골았다. 깊은 잠에 빠졌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구차를 준비해둔 작은집 식구들은 조금씩 화가 치밀지도 모른다. 임종의 시기는 늘 변덕스럽다. 살아 있는 자의 나침판을 망가뜨려놓곤 한다. 임종을 위한 살아 있는 자들의 모든 준비는 끝나 있었다. 작은할아버지의 역할만이 남았다. 그러나 작은할아버지는 백 년 동안이라도 잠을 잘듯 평화로워 보였다. 사는 것도 힘이지만 죽음으로 가는 힘도 힘이었다. 할아버지는 힘을 내기 전에 잠시 쉬고 있는 듯해 보였다.
나는 그러니까 그냥, 그대로, 있어보기로 했다.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리는 건 물론 아니다. 어차피 진실은 처음부터 오해되기 마련이니까.
춤을 추다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기도 한다. 하지만 삶이란 그대로 추는 것이다. 스텝이 엉키는 거 그게 바로 춤이고 삶이니까.
만약 모든 일들이 잔잔한 강물이 흐르듯, 종탑의 종소리를 들으며 작은할아버지가 잠을 자듯, 그렇게 분노와 부끄러움을 묻어둔 채 시간이 지나갔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날 것이다. 이두나가 당한 모욕과 멸시도 하느님의 품 안에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주꾸미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주꾸미에게 전화를 받고 그의 아내와 그의 똘마니에게까지 난폭한 전화를 받고 보니 나는 꽤 건장한 맷집을 지니게 된 듯했다. 웬만한 고문 정도는 견딜 수 있을 듯했다. 일제시대 독립투사쯤 된달까. 의지에 불타는 눈빛과 초콜릿 복근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인두질을 견딜 만한 튼튼한 허벅지, 주리틀기를 견딜 만한 단단한 종아리 정도는 될 듯했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차츰 속도가 붙자 종아리에 모래주머니를 매달았다. 나는 학부 때처럼 건장한 이공대생으로 변하는 듯했다. 아침과 저녁마다 푸쉬업을 했다. 처음엔 양손을 바닥에 붙인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자 한 손으로 푸쉬업을 할 정도가 되었다.
덤벨을 안고 윗몸 일으키기, 줄넘기 이백 번. 턱걸이 서른 번… 눈썹 위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땀을 흘리고 나면 몸속의 슬픈 소금기도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뭐, 흔하디흔한 말 있지 않은가. 지난 일들은 잊고… 묵묵하게 현재를 열심히 살기로.
그래, 나는 지난 일들을 잊기로 했다. 절치부심(切齒腐心)까지는 아니지만 와신상담(臥薪嘗膽)까지는 아니지만 양푼에 비빔밥을 미친 듯이 비벼 입속으로 우겨넣으며 과거와 현재, 기억과 미래, 무의식의 시간까지 모두 비벼서 그래 잊자, 그래 견디자, 그랬던 것이다. 소금을 넣을지 설탕을 넣을지 알 수 없을 때, 어느 쪽 길을 선택할지 모를 때, 시간을 그대로 내버려둘 일이다. 그러다 보면 가슴 속 독이 빠져나가기도 할 것이다.
생성광학 연구소 공개 강의가 다가오고 있었다. 번개를 몰고 연구실로 달려갔다. 연구소 복도를 지나는데 연구원 동기와 후배들이 나를 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렸다. 민진이 저번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두나, 주상도와 키스했다며? 이대팔한테 이두나와 키스했다고 떠들었다는데.”
“뭐? 어이없어. 내가 당한 거야…”
“그뿐만 아니야. 주상도랑 잤을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이 난리던데?”
“기가 막혀. 말도 안 돼.”
“주상도 소장이 자기 부원들하고 호프집에서 맥주 마시다가 그랬대.”
“뭐라고?”
“사람들이 내가 이두나와 사귄다 하면 같이 잤다고 생각할까 어떻게 생각할까… 하면서 헤죽헤죽 웃더래…”
“미친놈… 아예 잤다는 소문을 내고 싶어 난리가 났군.”
노출강박증 아니면 과대망상증 중증이었다. 그를 단순히 신랄하다거나, 외설적이라거나, 절망적이라거나, 어리석다거나, 약았다거나, 취약하다고 비난하기엔 부족했다. 그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주꾸미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는 개인적인 고독감을 덜기 위해 성적 노출을 떠들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성불능이나 자기 아내의 불감증에 대한 보상, 혹은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볼 때 마음의 평화를 위해 벌거벗은 여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망상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