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며칠이 지나자 나는 뒤집어진 물방개에서 다시 이두나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는 좀더 대범해지기로 했다. 침착하게 이 시기를 견디자. 견딤, 견딤만큼 좋을 게 있을까.
아버지가 부산에 계시던 작은할아버지를 모시고 오셨다. 아버지는 작은할아버지, 작은할머니, 사촌도 다함께 대동한다고 했다.
서울역에서 기다렸다. 기차가 도착하고도 한참이 지났다. 작은할아버지 식구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기억할 만한 두 명의 남성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한 명은 익살스러운 눈빛에 볼그스름한 뺨을 가진 주름살투성이의 한 노인. 한 명은 실핏줄이 드러난 매부리코에 완고한 입술을 가진 환갑 갓 넘은 사내. 전자는 작은할아버지고 후자는 아버지다.
기차가 도착하고도 개찰구로 빨리 나오지 않는 이유, 나는 그것이 주름살투성이 노인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작은할아버지는 장소를 불문하고 누군가를 항상 이야기에 끌어들이려 했다. 그곳이 음식점이든 경찰서든 목욕탕이든.
작은할아버지는 국가의 노인 복지정책에 대하여 떠들다가 닭구이 요리법에 대해 떠들기도 했다. 배우 사미자에 대해 떠들다가 자전거 수리 법에 대해 떠들기도 했다. 기차 안에서 아니면 개찰구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또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작은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나타나셨을 때 내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알았다. 작은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셨다. 몸이 깡말라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작은 공깃밥 같았다. 작은할아버지의 발그스름하던 뺨도 황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영 말이 아니었다.
작은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나, 곧 죽는다…”
“알고 있어요…” 나는 놀라지 않고 말했다. 인간은 언젠간 죽으니까.
“테오 신부를 만나게 해 도오.”
작은할아버지는 한 겹의 가죽으로 덮인 해골로 변해 있었다. 얇은 모직 요와 이불에 싸여 작은 애기처럼 보였다. 작은할아버지는 곧 돌아가실 모양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테오 신부를 만나야 한다고 떼를 썼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시다 작은할아버지는 죽을 수도 있었다. 고해성사도 못한 채 말이다. 식구들이 말렸다. 의사는 더 말렸다. 그러나 작은할아버지 고집은 고래힘줄 같았다. 몸집은 작았지만.
작은할아버지는 뭔가 중요한 고백거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임진왜란 때까진 아니어도 일제시절까진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 당시 자신이 일본 총독부의 첩자였다든가 혹은 밀고자였든가. 아니 가족들이 전혀 모르는 고종의 밀사 혹은 독립군에서 훈련받은 암살자였을 수도 있다.
숨이 콧구멍 속으로 거칠게 들어갔다 나갔다 했다. 마지막 공기를 들이마시기라도 하는 듯. 작은할아버지의 콧구멍은 생각보다 힘차 보였다. 크게 벌렁거리며 우주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임종을 맞기 위한 준비는 생각보다 거창했다. 우선 작은할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감청색 모직 양복을 입고 계셨다. 노인네답지 않게. 그리고 그전에 깨끗하게 목욕을 했다.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죽은 자의 팬티는 깨끗해야 하므로. 팬티는 남성정력의 상징 ‘트라이’였다. 입안을 가그린으로 정리하고 강아지 ‘포피’에게 밥을 잘 주란 부탁도 했다. 평생을 함께했던 경리장부책을 가보로 물려주겠다고 했을 거고 식구들은 다른 물려줄 게 없나 하고 작은할아버지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할아버지는 계속 테오 신부에게 데려다 달라는 말만 했다. 의사와 식구들은 말했다.
무엇 때문에 길에서 객사를 하려 합니까? 가다 돌아가시게 되면 어쩌시려고요?
부산에도 신부가 있었다. 작은할아버지가 테오 신부에게 꼭 고해성사를 해야 할 무언가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기차역 계단에서 휠체어를 내리고 식구들이 짐을 챙겨 따라오는 데 시간이 족히 걸렸다.
“빨리 서둘러라 안 카나! 곧 죽을 것 같대이!”
작은할아버지는 죽을 듯이 소리쳤다. 아버지와 작은집 식구들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서둘러! 곧 죽을 것 같다”는 호통이 꼭 “서둘러! 곧 똥이 나올 것 같단 말이야!”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