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휴대전화가 울린 건 그때였다. 한나 언니가 거실에서 형두를 불렀다. 형두는 하이파이브를 입모양으로 외치고 방을 나갔다. 나는 액정을 봤다. 모르는 번호. 밤 11시 30분. 불안한 예감.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이두나! 야, 미친 XXXX야! 그냥두지 않겠어… 네가 뭔데 주상도 소장님 댁에 전화해서 그 집안을 풍비박산을 만들어놓는 거야!”
휴대폰을 열자마자 욕설이 터져 나왔다. 연구소 관리과 직원 강만봉이었다.
“주상도 소장님과 지금 술 마시고 막 헤어졌는데. 글쎄, 지금 집안이 말이 아니라고 하소연하시더라. 네가 뭔데 주상도 소장님 마음을 그렇게 상심하게 만들어?”
“아니ㅡ 소장님이 먼저 나한테…”
“웃기고 있네. 앉아서 소변을 보니까 모든 남자들이 너를 다 공주로 안다고 생각하나 보지? 머리에 든 년들은 그게 문제란 말이야. 소장님이 술 따르라면 따르고 마시라면 마시고 벗으라면 벗고 하자면 하는 거야, 이년아. 요즘 배운 년들은 여자가 뭔지 모른다니까.”
“아니, 이 사람이…”
“야 이년아, 남녀 문제는 집 바깥문제로 끝내야지 왜 집안에까지 끌고 들어가고 난리야. 미친년아! 주상도 소장님이 전기학계에서 거물인 거 알아 몰라? 너 실수한 거야.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두나 너, 학계와 연구소 쪽에서 완전 숨통 끊어놓을 거야. 팔다리 다 잘라놓겠다고. 알겠냐 XXXX야?”
강만봉은 기차화통을 삶아먹었고 초당 6경(60,000,000,000,000,000)개의 전자를 일으키는 비행기 엔진을 구워먹었다. 난폭하고 활발한 전자가 내 귀로 폭격을 해댔다. 불이 일어났다. 귓속이 활활 타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가 나타나는 곳엔 언제나 맥주병이 깨지고 술잔이 날아갔다. 머리채를 잡고 포크로 머리를 찍었다. 아주 사소한 것을 싸움의 명분으로 삼았다. 싸움의 이유는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확인해 보이는 것이었다.
술집에서 그의 말은 대개 이랬다. “남자는 말이지. 모름지기 몸이야. 우람한 근육으로 밤일 잘해주고 낮엔 직장 가서 두목 잘 모시면서 일하고… 야, 원샷이야. 마셔마셔. 오늘 내가 다 쏜다.” 그러곤 술잔을 돌렸다.
한번은 술집에서 누군가 주상도 소장의 험담을 했다. 강만봉은 자신이 모시는 보스를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밝힐 절호의 찬스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앞으로 나갔다. 자기를 말리는 똘마니들의 손을 뿌리쳤다. 의자를 움켜잡았다. 발동이 걸린 오토바이 엔진처럼 열이 잔뜩 올라 있었다. 두 다리를 떡 버티고 의자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의자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의자를 요란하게 던진 다음 그가 잡은 것은 맥주병이었다. 맥주병이 몇 개 날아가고 나서는 소주병이었다.
그는 대개 관리실에서 보일러를 고치거나 배수관을 고치는 일을 했다. 스패너를 들고. 남자직원들과 호쾌하게 어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난폭한 사람이 되곤 했다. 그것도 지나칠 만큼. 난폭한 것으로 충성을 맹세했다.
주상도 소장이 그를 확실하게 밀었다. 소문에 먼 친척뻘이란 말도 있었다. 그는 관리과 대리 자리로 승진했다. 관리과에서 넘버 투가 되었다. 쓰리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는 더욱 잔인해졌다. 주상도가 시키는 일이면 인간을 원숭이로, 원숭이를 인간으로도 만들 수 있는 위인이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야, 이 XXXX야. 어디서 까불어. 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네 눈에? 나 옛날의 이두나가 아니야… 성추행당한 이두나란 말이야. 이제 무서울 것도 없어… 어디 할 테면 해봐, 나도 당하고만 있지 않을 테니까…”
따위의 말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류는 버스에서 누가 발을 밟았다거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잤다는 말을 듣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분노다. 속이 뒤틀려서 자책을 하거나 분노에 차서 목이 쉴 정도로 고함을 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목에서 어떤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떤 비명도. 대신 투두둑 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응? 웬 액체가 내 눈에서…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맑은 액체를 보고 있었다. 그제야 입에서 신음소리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꺼이꺼이 대고 있었다. 몸뚱어리를 태아처럼 말았다. 방바닥에 누워 버둥댔다. 뒤집어진 물방개처럼. 그러자 눈물이 양 귀 우물을 채우려 들었다.
에이, 좆같은 세상이군.
치욕으로 밥 말아먹는 것 같아…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