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회
형두, 한나, 건형, 나 넷이서 함께 맥주를 마셨다. 티브이는 마침 프로야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모두 롯데의 광팬들이었다. 신나게 야구 이야기를 하며 떠들어댔다.
순간 내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거실 탁자 위에 반짝이는 것. 어젯밤 내가 한 코팩이었다. 피지가 예술적으로 묻어나와 버리지 않고 둔 전리품.
나는 황급하게 발가락으로 코팩을 치웠다. 1루로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타자처럼. 코팩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겨우 세이프였다. 휴우…
건형이가 나를 돌아보며 무슨? 이란 뜻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얼짱 각도로 희죽 웃으며 양어깨를 들었다 내렸다.
형두와 한나가 슬그머니 자기들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건형의 손을 끌었다. 내 방으로 갔다.
“여기서 자?” 건형이 물었다.
“우리?” 내가 되물었다. 건형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 여기서 자냐고?”
“으응…” 나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밤 스포츠를 하기로 했다. 남녀가 할 수 있는 격렬한 운동…
자전거 타기…였다.
“너희 형부나 언니 다 좋은 사람 같은데…” 건형이 자전거를 돌리며 빙긋이 웃었다.
“야, 말도 마. 못 잡아먹어서 난리야. 생활비 적게 내놓는다고 난리지. 시집 안 가고 자기네 신혼집 방해한다고 난리지. 심지어는 형두가 내 칫솔로 자전거 톱니바퀴를 깨끗이 닦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하하하하…” 건형이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어릴 때 엄마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어. 두발 자전거, 어른용 자전거였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곧잘 넘어졌어.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는 순간, 그 몇 초 전부터 넘어지리란 것을 알고 있어. 신기한 일이지만 명료하게 아아, 넘어지겠구나 하는 느낌. 일종의 자기 몰락의 느낌? 데자뷔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나는 쪼그리고 앉아 건형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자전거와 내 다리가 일체가 되는 느낌. 함께 넘어진다는 운명도 알게 되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천천히 말하는 건형.
“요즘,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
“무슨 말이야. 두나야, 내 다리가 페달에 붙어 있듯이 우리 같이 달리게 될 거야. 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게 될 거고…”
갑자기 마시멜로 같은 달콤함이 몰려들었다. 나는 건형의 등 뒤로 가서 자전거 의자에 함께 올라탔다. 건형의 허리를 꼬옥 안았다. 세탁기가 선하품을 하며 닭살커플을 보듯 우리를 쳐다봤다. 참 별꼴이라는 표정으로.
닭살이든 닭발이든 나는 건형의 허리를 더 세게 껴안았다. 이천 년 뒤에 화석으로 발견되어도 좋을 듯이. N극과 S극처럼 꼭 붙었다. 전자들이 전선 안에서 강력하게 흘렀다. 강한 전류가 흐르자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