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회
“예?”
“환자분 성함이…”
“서금순요…” 나는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목소리가 한없이 떨리며 파동을 했다.
“오늘 수술한 환자네요. 619호실인데…” 간호사가 차트를 찾아보더니 말했다.
“네, 맞아요. 619호실… 그런데 침대에 다른 사람이… 남자가…”
“오늘 수술하셔서 다른 곳에 가실 수도 없는데…”
“당장 같이 가봐요… 엄마가 없어졌다고요…”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비명 같았다. 인간의 몸에서 나온 소리 같지 않았다. 자고 있던 간호사는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을 것이다.
간혹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충격적인 광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자가 남자로 변한다거나 남자가 여자로 변한다거나 이십 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거나 멀쩡하게 살아 있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트럭에 치어 헌신짝처럼 공중으로 날아가거나 하는 일말이다. 때로 계시처럼. 그런 일들이 비현실적으로 일어난다.
엄마가 남자로 변한 것일까. 그것도 뚱뚱하고 천장이 들썩거릴 정도로 코를 심하게 고는 이상하고 괴상스러운 남자로? 수술은 분명 갑상선 수술이었다. 성전환 수술은 아니었다.
엄마는 도플갱어도 늑대인간도 아니다. 오랫동안 관찰해온 결과… 엄마는 엄마였다. 시장에 나갔다 찬바람이 불면 자신의 등 뒤에 숨어 있으라고 하는 엄마, 식탁에서 밥을 먹다 숟가락이 떨어지면 나보다 먼저 고개를 숙여 내 숟가락을 집어주는 엄마, 엄마는 인간 중에서 가장 따뜻한 인간이었다. 늑대인간과는 확실히 달랐다.
복도를 달렸다. 619호실 앞에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간호사와 함께 병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어둠으로 완전하게 무장한 병실 안에 여전히 늑대인간이 인간으로 변하지 않은 채 침대 위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코고는 소리는 좀 전보다 컸다. 무슨 시위라도 하는 듯이. 좀 있으면 입가로 거품 섞인 침을 흘릴지도 모를 일이다. 도저히 병실용 이불을 까뒤집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간호사도 당황한 빛이었다. 그녀는 그래도 직업적 성의를 다하려 했다. 그녀는 간호학교에서 배운 의료인의 윤리와 책무를 다시금 머릿속에서 되뇌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환자용 침대로 다가갔다.
“저, 환자분… 환자분…”
간호사는 늑대인간을 깨웠다. 예상대로 늑대인간은 남자였다. 그것도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남자…
아버지였다.
“응? 아버지? 여기 어떻게… 계세요?” 늑대인간, 아니 아버지는 눈을 비비며 귀찮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으응, 두나 왔나?” 아버지가 가까스로 말했다.
“아버지… 엄마, 엄마는 어디 있어요? 오늘 수술하셨다면서요…”
역시 엄마는 납치된 게 분명했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범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혹시 소장이 나에 대한 분풀이로 엄마를 납치한 건 아니겠지?
“으응… 두나 왔구나.”
어디선가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 역시 엄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목이 잔뜩 쉬어버린 늙은 여가수의 목소리였다.
“응? 어디야…” 나는 침대 옆을 살폈다.
환자용 침대 옆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엄마가 누워 계셨다. 목에 흰 붕대를 잔뜩 감고서… 팔뚝에 링거 바늘을 달고서… 온몸에 뭔가를 칭칭 달고 엄마가 바닥 간이침대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간호사가 “아니, 환자분 여기 누워계시면 어떻게 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아니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아버지가 분명 수술 당일 엄마와 함께 있으면서 환자 간호를 하겠다고 자청했을 거고(적어도 그들은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온 룸메이트였으니까), 늘 엄마보다 편한 것만 차지한 아버지가 환자 보호라고 병실에 들어와서 정작 잠을 청하려 하니 보호자용 간이침대가 너무 좁고 바닥에 가까워 불편했을 터였고, 그것을 보다 못한 엄마가 수술한 끙끙거리는 몸으로 아버지와 침대를 바꾼 게 분명했다. 아니면 아버지가 먼저 엄마에게 침대를 바꾸자고 제안을 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까지 상상하자 부부간이라 게 김치라면처럼 맵고도 짠 희한한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정되는 순간 종신제 주종관계로 맺어지는 당나귀와 주인의 관계랄까. 엄마는 한번도 주인을 들이박은 적이 없는 당나귀였다.
엄마가 생전처음 하는 수술이었다. 큰 수술이 아니라고 손은 내저었지만 수술은 수술이었다. 힘든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아버지, 그냥 집에 가서 주무세요. 우리집에… 제가 여기 엄마 옆에 있을게요.” 나는 수술을 막 마친 환자를 위로하듯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