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주상도였다.
도둑고양이처럼 퀭한 눈빛. 뭔가가 섬뜩한 기운으로 번쩍였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것 같다. 경악이다. 연쇄살인마처럼 내 뒤를 쫓고 있군.
“왜 내 전화 안 받는 거야?”
“…”
나는 침착하려 애썼다. 심호흡을 했다.
나는 그를 외면한 채 그를 스쳐 지나쳤다. 그러자 그가 내 손목을 세게 잡았다.
“어딜 가려고 해?” 낮게 깔리는 노기 섞인 목소리.
“나, 할 말 없어요.” 나는 그를 노려보며 천천히 말했다.
“할 말이 있고 없고는 이야기를 해보면 알 거 아냐?” 주상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할 말이 없다고 했잖아요.” 나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는 내 뺨을 한 대 후려쳤다. 아악~. 나는 얼굴을 감쌌다.
“야, 네가 뭔데 사람 치고 난리야?”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험상궂게 인상을 찡그리더니 내 손목을 잡고 끌기 시작했다. 오늘은 꼭 너를 데리고 갈 데가 있어.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씩씩거렸다. 나는 안간힘을 쓰면서 버텼다. 하지만 육중한 물리적 힘을 지닌 남자에 비해 여자의 힘은 너무 미약하고 무력했다. 바닥에 질질 끌리다시피 하면서 그가 나를 차에 태웠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났다. 그건 영혼의 끔찍한 발작이라 불리는 공포였다. 그의 손아귀가 나를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매고 있다는, 캄캄한 두려움… 왠지 그가 나를 끝없는 바닥으로 내리꽂을 것 같은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가 입을 열었다.
“왜 내 전화 안 받는 거야?”
같은 물음. 나는 냉정해보이려 애썼다. 창가만을 노려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무릎이 달달달 떨렸다. 차는 한강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이번엔 그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앞만 쳐다봤다. 나는 두려운 눈으로 주변을 가득 채운 유령 같은 어둠만을 응시했다. 유령 같은 밤안개였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부연 욕망의 허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어쩌면 그는 나를 한강으로 데리고 가 나에게 사죄를 할지도 모른다. 그래, 그는 적어도 학계에서도 연구소에서도 명망 있고 인품 있는 학자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 아닌가. 어쩌면 자신의 행동을 용서받으려 할지도… 아니, 또다시 사랑을 받아달라고 강요? 협박? 설마?… 아니, 그 방식이 무엇이든 간에 이런 따위의 일은 공포야, 공포…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동차 시트 벨트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차는 한강고수부지에 멈췄다. 도심 불빛이 길게 강바닥에 혀를 출렁거리고 있었다.
“두나 씨,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당신이 너무 매력적인 거지.”
그의 손가락이 내 귀 뒤쪽에서부터 천천히 턱 가까이로까지 훑어 내렸다. 길고 흰 손가락이었다.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소장님, 그렇지만…” 힘을 내려 했다. 하지만 질소를 흡입한 듯한 이상한 목소리가 났다.
“너무 예뻐서 그래.”
가슴이 답답해졌다.
갑자기 그전 직장에 있을 때 일이 떠올랐다. 직장 선배였다. 내게 친절했기에 나도 공손했다. 언제나 웃어주었기에 나도 언제나 웃어주었다. 어느 날 회사 내 휴게소에서 커피를 타고 있었다. 그가 슬그머니 내게로 다가왔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휴게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내 허리에 한쪽 팔을 둘렀다. 나머지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는 자기 바지 앞으로 끌어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러났다. “이러지 말아요. 선배!”
그의 손을 뿌리치자, 그는 뒤로 물러서며 손가락 마디를 뚝뚝 끊었다.
“손가락 하나 댔다고 그렇게 뛸 듯이 놀라고 그래. 이제 이 정도는 할 만해진 사이 아니던가?” 그가 씹던 껌을 뱉어내듯 말했다. “좋아, 알았다고.” 이후 선배는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사무실에서 마주칠 때도 나를 모르는 척했다.
“이러지 마세요. 소장님!”
나는 내 턱선을 훑던 소장의 손을 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