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
테오 신부는 등산할 때도 로만 칼러를 하고 나타났다. 등산용 티에 로만 칼러를 달다니…. 김치찌개에 모차렐라 치즈를 얹어놓은 격이었다. 룩섹을 매고 섹에 달린 허리벨트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소시지를 보는 것 같았다. 프랑크 소시지에 허리를 졸라맨 비엔나 소시지라고나 할까. 그는 씩씩거리는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두나야, 여기서 좀 쉬어가자. 산에 오면 하느님의 기운을 더 잘 느낀다니까.”
그리곤 목에 둘렀던 등산용 빨간 손수건을 풀어 이마를 닦았다. 다시 판다곰처럼 희죽 하고 웃었다.
“선배, 아니 신부님, 몸 무거운 사람치곤 그래도 산 잘 타네요.”
“내가 그래도 힘 꽤나 쓰잖아.”
“그래서, 저번에 있던 성당에서 일낸 거예요?”
“일내긴 무슨… 그 놈이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데… 다른 신도들까지 교리공부 못하게 교리시간마다 와서 깽판을 쳐대잖아. 한 방 먹인 거지. 야, 나중에 그 동생까지 집에서 삼지창 같은 갈퀴를 들고 왔다니까.”
“정말요?” “못된 두 형제를 손 봐줬지. 실컷 등짝을 두들겨 줬으니까.”
“알만해요…”
“히히… 그래서 위험하고 난폭한 신부라나? 주보에 났어. 나 유명해졌잖아.”
“그래서 우리 동네로 오게 된 거잖아요.”
“히히… 예수님과 함께 왔으니까 괜찮아…”
“히히… 예수님과 함께 왔으니까 괜찮아…” 나는 테오의 말을 그대로 흉내 냈다.
“뭐야, 너 아직도 내 흉내 잘 내네?”
테오는 산이 떠나가게 히히히 하고 웃었다. 대학 때 동아리에서 나는 테오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역할극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었다. 심리 치료용 역할극이었다. 약간 나른한 듯하면서도 코믹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힘 있는 어투였다.
처음 테오가 우리 성당에 왔을 때 신도들은 모두 놀랐다. 입을 열었으나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커다란 덩치를 사제복으로 가렸지만 큰 북극곰이 서 있는 듯했다. 미사를 볼 때 천둥 같은 목소리는 이 동네에서는 걸맞지 않았다. 테오는 자신이 첫 주일 미사 때 강론을 하면서 그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그전 성당에서 혈기왕성한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론했던 것이다. 자그마한 성당에 울려 퍼진 테오의 목소리는 마치 폭탄과 같아서 동네 노인들과 몇몇 부녀자들, 어린애들은 깜짝 놀랐다. 고작 스무 명 정도가 모인 성당이었다.
그는 이 동네에서는 집채만 한 덩치와 천둥 같은 목소리를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테오 신부는 본래 싸움에 적합한 천성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싸움의 상대라고는 외로움밖에 없었다.
그 전 교구에 있을 때 그의 취미는 ‘다이소’ 같은 생활용품 매장을 구경하거나 시장에 나가 교구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다이소’를 가서 물건들을 구경했다. 사지는 않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조잡한 플라스틱 물컵이라도 아름다운 비밀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테오는 시장에도 잘 나타났다. 그가 나타나면 시장이 들썩거리기도 했다. 천둥 같은 목소리로 떠들다 폭탄같이 웃음을 터뜨렸으니까.
이 동네에서도 테오가 할 일은 있었다. 병석에 오래 누워 있는 노인을 찾아가 함께 신문에서 십자말풀이를 하기도 하고 사제관 지붕을 수리하기도 했다.
―신문이란 말이야. 십자말풀이하는 재미 빼면 시체야. 신문은 온통 가증스럽고 음란한 행위밖에 없다니까. 지난 24시간 동안 일어난 모든 불행과 재앙들이 담겨 있단 말이지. 전투, 교통사고, 살인, 파업, 파산, 화재, 독살, 자살, 이혼, 정치인들과 배우들의 잔인한 감정 따위를 다루고 있잖아. 우리를 흥분시키거나 긴장시킬 것을 오락거리로 만들고 있을 뿐이야…
테오는 신문을 읽으며 늘 이렇게 혀를 찼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정말 미스터리한 일에 대하여 신문은 아무 말도 안한다니까. 가까운 예로, 정치가의 불명예 스캔들을 들추다보면 수사 도중에 비서들이 죽는 예가 종종 있어. 그리고 그 사건들은 대개 타살인지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미제로 남는다니까. 이해하기 힘든 사건들이 곧잘 일어나는데 그게 바로 신문이야.”
테오는 가끔 십자가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닦았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산책이래 봐야 산언저리를 왔다갔다하는 게 전부였다. 가끔 번개가 뭔가를 발견한 듯 컹컹 짖으며 어디로 달려가곤 한다. 따라서 뛰어가 보면 빈 빵봉지였다. 번개도 이 동네로 와서 완전 애완견처럼 변했다. 목덜미를 만져달라고 자꾸만 안기려 했다. 사냥은커녕 산책하는 것도 흥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테오가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알코올을 섭취하는 일이었다. 테오는 대학 때부터 알코올을 좋아했는데 적절한 혈중 농도를 유지해야 정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 목사가 되지 않고 신부가 된 것은 하느님을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었다.
싱크대를 열다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보였다. 투명한 유리병, 반쯤 남은 보드카였다. 술이 생겼으니 산에라도 가야겠다 하고 테오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