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회
“우리나라에 왜 실종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지 아냐?”
“아뇨…”
“산이 많기 때문이야. 우리나라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라잖아. 산이 많으니까 사람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암매장할 곳이 많으니까. 실종된 사람들 아마 다 산에 묻혀 있을 걸. 산을 다 파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렇지. 산에 암매장, 정말 깨끗한 뒤처리야.”
“신부님!”
나는 소리를 빽 질렀다. 뒤를 돌아보니 테오 신부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돌부리를 밟고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산 중턱쯤은 된 듯했다. 아랫동네 아파트촌이 다 보였다. 바람이 귓불을 스쳤다. 서늘하게 등줄기를 따라 흘렀다. 하늘이 맑았다. 세상에 어떤 죄도 다 맑게 씻어줄 듯이.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는 벌써 붉어지고 있다. 가지마다 붉은 선혈이 단단히 매달렸다. 싱싱한 핏줄기였다.
돌계단으로 된 오르막 산길이더니 이윽고 평지와 같은 능선이 나타났다. 오르막을 통과하느라 테오 신부의 얼굴이 땀범벅이다. 넓고 편편한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더니 둥글납작한 큰 얼굴 옆선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평평한 능선이 나타났다. 그는 특유의 보조개로 희죽하고 웃었다. 옆으로 찢어진 작은 눈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헉헉거리던 숨소리가 차츰 잦아들었다. 역시 산은 능선을 걷는 맛이란 말이야. 테오는 다시 희죽 웃고는 소매 옷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어느 날 성당에 젊은 신부가 왔다고 해서 가 보았다. 테오가 동네 성당 주임 신부로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동네는 워낙 소박하고 퇴락한 곳이었다. 기와 한옥들과 오래된 아파트가 대부분인 작은 동네. 몇 채 안 되는 양옥 건물 가운데 하나가 성당이었다. 그 성당이 다른 집과 구별되는 것은 옆에 종탑이 딸려 있다는 거였다.
테오는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던 오빠였다. 대학 선배이기도 했다. 그는 대학 때 미모로 ‘한 끗발’하던 음대생을 좋아했다. 첼리스트인 그녀를 열심히 따라다녔다. 그리고 충실하게 내동댕이쳐졌다.
청춘의 시기에 짝사랑하던 여자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모두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은 그런 자를 단순하게 받아줄 만큼 여유로운 분이 아니다. 좀 더 큰 헌신을 요구하는 분이니까. 테오도 그런 것에 크게 상처 따위를 입는 유형이 아니었다. 상처를 이기기 위해 수도자처럼 금식을 한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는 신이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채식주의자인 그가 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녀에게 버림받고부터일까. 갑자기 몸이 불어난 그는 대학부 씨름 선수로 발탁되었다. 발탁된 지 얼마 안 되어 상을 휩쓸었다. 씨름선수로 이름이 나자 대학학보 화보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대개의 씨름 선수답지 않게 그는 무슨 락 가수처럼 머리를 기른 채 살집이 잔뜩 부푼 젖가슴을 갖고 있었다. 허리께엔 씨름장사 벨트를 하고 있었다. 옆으로 쫙 찢어진 작은 눈으로 희죽하고 웃으며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섹시하다기보다는 엽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취향도 다양했다. 어느 땐 판다 곰 구조운동에 참여한다고 중국에 간다고 했다. 어느 땐 멸종위기에 처한 호주의 개미핥기 살리기 운동에 참여한다고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대서양 한 가운데라고 엽서가 날아왔다. 어느 날은 아프리카 난민촌이라고 편지가 날아오기도 했다. 편지봉투 속에는 아프리카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피부 빛이 하얀 테오도 까맣게 타서 흑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옆으로 쭉 찢어진 채 웃고 있는 그 가는 실눈을 보면 당장 사진에서 그를 찾아낼 수도 있었다.
사제복을 입은 테오를 내가 알아보고 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메아리처럼 테오도 동시에 어! 라고 소리쳤다. “용케도 나를 알아보네.” 테오는 자신의 사제복 위로 성스러운 원환이라도 둘러쳐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선배같이 덩치가 큰 신부를 잊어버리기는 좀처럼 쉽지 않는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