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슬슬 대화가 따분해지려 했다. 팬티 고무줄 부분이 가렵기도 했다.
소장과는 적절한 거리 유지가 가장 관건이었다.
“저 소장님, 이제 그만 가시죠. 집안이 엄격해서 저는 일찍 들어가야 합니다.”
그는 예의 바른 교양인처럼 아, 그렇군요. 시간이 벌써? 하고는 손목시계를 잠깐 보는 듯했다. 시계는 신사의 상징, 검은 가죽띠 론진이었다. 일어나 몸을 기우뚱하더니 이마를 짚었다. 와인을 좀 많이 마셨나? 양 볼이 팽팽하고 불그스름해져 있었다. 그래도 눈빛은 여전히 반짝였다.
“아, 여성을 혼자서 보낼 수는 없죠. 늦은 시간이니 제가 댁까지 바래다 드리죠. 당연히 바래다 드려야죠.”
그는 괜찮다는 내 말을 극구 가로막았다. 검게 번쩍이는 모범택시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택시는 지나칠 듯하다 급히 섰다. 차는 깜빡이를 켜더니 후진을 하며 내 앞으로 왔다. 소장은 급히 나를 뒷자리에 태웠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몸을 실었다. 택시 뒷자리는 생각보다 좁았다. 나는 차창 옆으로 바짝 몸을 기대앉았다. 택시가 코너를 돌 때마다 그가 몸을 기우뚱거렸다. 몸을 굽힐 때마다 살이 접히는 소리가 났다. 숨을 쉴 때마다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택시 밖으로 서울 도심 빌딩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불빛이 아름다운 도시다. 눈부신 전깃불의 명멸 속에 청춘과 퇴폐가 숨을 쉬었다. 밤이 매혹적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택시는 대학로를 빠져나와 을지로를 통과했다. 남산터널 쪽을 향했다. 창문을 열자 텁텁하던 차 안 공기가 조금 시원해지는 것 같다.
그는 뭔가를 또 끝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국 미래 과학의 에너지 개발에 대한 소견이었다. 그는 역시 대단한 연구자였다. 한국 과학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는 듯했다.
택시가 남산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앞에 서울 야경이 펼쳐졌다. 약간의 멜랑콜리와 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왔다. 나는 반쯤 열어둔 창문 쪽으로 뺨을 들이댔다. 나무숲에서 외로운 영혼들이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이었다.
택시 안이 조용했다.
침묵이 흐르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주상도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거칠고도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입술을 찾더니 텁텁하고 거친 혀를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야생동물처럼 나는 버둥거렸다. 양팔과 양다리로. 택시 안이어서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는 다시 한 팔로 내 다리 사이를 거칠게 뚫고 들어왔다. 팬티를 잡아 강한 완력으로 끌어내렸다. 팬티가 허벅지까지 벗겨졌다. 안간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그러나 양쪽 팔은 이미 그의 한쪽 팔에 철저하게 제압된 뒤였다. 입에선 비명소리조차 나질 않았다. 말할 수 없는 치욕감이 온몸으로 번져갔다. 실체가 아니라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세계에 던져져 있는 듯했다. 몰락감이었다.
“가만히 있어! 여기는 택시 안이야!”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명을 지르려는 내 입을 틀어막았다. 뜨거운 입김이었다. 분노가 요동을 쳤다.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하복부에 예리한 아픔이 전해져 왔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분노가 온몸으로 번졌다. 나는 다리를 강하게 비틀었다. 벗겨진 엉덩이가 택시 시트에 쓸리면서 화끈거렸다. 그는 굵고 힘센 손가락으로 양다리 사이를 핥았다.
그리곤 와인색의 짙붉어진 입술로 하얀 블라우스 위에 솟은 젖꼭지를 찾고 있었다. 가슴과 가슴 사이였다. 블라우스 패인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강한 흡착력이었다. 젖가슴을 찾던 입술이 유두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