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다른 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에쎄 담배 냄새, 돼지고기 냄새, 박하사탕 냄새가 뒤섞인 그놈과의 키스가 마지막이었다.
남자들은 키스를 여자의 옷을 벗기기 위해 대충 치르는 전초전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키스를 잘하려면 대단한 시간과 공이 필요하다. 우선 섬세한 입의 모든 구조와 가능성을 탐구해야 한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듯 템포와 리듬을 알아야 한다. 언제 강하게 누르고 언제 가볍게 장난치듯 스쳐야 하는지, 언제 입을 벌리고 언제 떨어져야 하는지. 키스를 잘하려면 침과 호흡을 조절해야 하고 관능적으로 머리의 위치를 바꿀 줄도 알아야 하고 얼굴 전체에 키스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입술 근처와 손가락, 귀, 목덜미, 관자놀이, 눈썹…
건형은 우선 혀를 내밀어 내 입술 가장자리부터 핥기 시작했다. 침이 가득 묻어 있는 충만한 혀였다. 그의 침은 너무 축축하지도 뻑뻑하지도 않았다. 건형은 윗입술을, 다음에 아랫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그리고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혀는 축축하고 긴 몸을 뻗어 내 치아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리고 내 입속에 있는 또 다른 제 동료를 찾기 시작했다.
건형은 입의 근육 하나하나를 조절하면서 건반을 누르듯 내 혀를 누르고 핥고 빨았다. 목덜미를 애무하다 내 얇은 스웨터 소맷자락 안으로 손을 부드럽게 집어넣었다. 손은 브래지어 앞에서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부드럽게 오른쪽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깨지기 쉬운 복숭아를 만지듯 조심스러웠지만 힘 있는 손놀림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유두를 살살 만지기 시작했다. 유두에 힘이 가는 듯하자, 내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읍~”
나는 갑자기 몸을 비틀며 고개를 외로 숙였다. 헉헉~하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왕성하게 움직이던 앞 유리 와이퍼가 고장이 나 갑자기 멈춘 듯. 와이퍼가 제자리에서 딸깍딸깍 제자리걸음을 했다. 헉헉댔다.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왜, 왜, 그래? 아직도 나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건형이가 물었다.
“아니, 아니…”
나는 강하게 대꾸하곤 다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실은 나…
가을되고 찬바람 불면… 비염이 심해져서… 코로 숨을 쉬기가… 힘들어…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실은 나 심한 비염이야, 라고 말하는 대신 건형아, 건형아… 우리… 천천히… 조금씩… 다시 친해지자. 아직 마음의 준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러자 건형은 다시 예의 그 제스처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빙긋 웃었다. 아, 미안, 그렇지? 내가 너무 성급했어(아니, 더 진도 나가도 괜찮아), 그래, 그러지 뭐, 삼 년 동안 서로 공백기가 있었으니까 삼 년은 충분히 내가 기다려야 당연할거야(아니, 삼 년이나 기다리다니, 겨울 지나면 비염 나을 거야). 우리 숙녀를 집에 빨리 데려다 줘야겠는 걸? 가자~하고 건형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이렇게 빨리 집에 안 들어가도 되는데…). 나는 건형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아직 아홉 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건형과 헤어져 아파트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야, 금방 튀긴 음식이 맛있지 데운 음식 또 데워 먹으면 맛있는 줄 아니?” 민진의 말이 떠올랐다. 데운 음식이라도 맛과 향이 새롭게 달라진 음식이라면… 또 다른 문제겠지? 나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보도블록 위를 걸었다. 하이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괜히 웃음이 났다.
현관문을 들어섰다. 형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야~”하고 불렀다. “쟤는 처제한테 만날 야~냐?” 이번에 비디오 반납은 아닌 듯했다.
“야, 이두나, 너 핸드폰 왜 안 받고 그래? 연구소에서 너한테 연락 안 된다고 집에까지 전화오고 그랬어.”
“뭐, 무슨 일로?”
“응, 내일 급하게 풍력인가 뭔가 필드 조사한다고 강원도에 가야한대.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준비하고 나오라고 연락왔던대?”
“으응… 그 일정이 그렇게 갑자기 빨라졌나? 난 처음 듣는 이야긴데?”
“갑자기 결정된 거래.”
전화는 어떤 남자에게서 온 전화였다고 했다. 연구소장 주상도였다. 가방을 열어보니 주상도 소장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족히 열 통 가량이나 되었다. 마치 네가 받나 안 받나 내기라도 하는 듯이 버튼을 눌러댔군… 쩝. 아무래도 에너지 절약 전력팀 프로젝트와 관련된 듯했다. 일주일 전에 풍력 발전과 관련하여 강원도 삼양 목장 쪽에 간다는 말은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급하게 빨리?
주상도 소장은 집 앞에서 차를 대기하고 서 있었다. 검은 가죽 시트를 입히고 선루프(sunroof)가 달린 작은 밴이었다. 그는 마치 휴가라도 가는 사람처럼 핑크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아이보리 가방을 매고 나타났다. 가방은 알이 곧 부화할 듯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다. 후드가 달린 마이는 베이지색 재킷에 격자무늬가 들어가 있어 금방 보기에도 고급처럼 보였다. 1박 2일 코스치곤 긴 휴가라도 가는 차림새였다.
“어제 갑자기 연락받아서 놀랐죠? 전력개발팀 회의에서 갑자기 정해져서…”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있나요?”
“지자체에서 빨리 보고서 내라고 했다고 발전소 팀이 우리 쪽으로 연락이 왔어요. 갑자기 인력을 동원하다 보니까 우리 둘밖에 시간되는 사람이 없더군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