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참가자들은 주춤하는 기색이었다. 겁먹은 토끼 같았다. 상상은 했지만 이건 완전 원시로의 귀환이군. 연구원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고상과 도도도 이럴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보고서를 제출할 때도 에스티로더 향수를 엷게 뿌려 제출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 이들이었다. 햇빛 속이라 자외선 차단제를 너무 많이 발랐는지 얼굴이 허옇게 보였다. 하긴 그들은 차단제와 파운데이션을 목발처럼 의지하지 않고서는 사람들 앞으로 걸어나올 수도 없을 것이다.
여자 연구원들이 주춤거리자 남자 연구원들이 나섰다. 한두 명씩 맛을 보기 시작했다. 현수는 저 고대 용맹스러운 원시인처럼 풀을 뽑더니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음, 먹을 만한데?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당나귀나 토끼처럼 풀을 맛있게 씹어댔다.
오래전 인류는 초식주의자였다고 한다. 나무열매를 따먹고 풀을 뽑아 먹고… 그러다 화식이 생기면서 원시인들은 매머드를 사냥해 갈비뼈를 뜯기 시작했다. 불을 발견한 것은 위대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불은 원시인들에게 잔인함을 가르쳤다. 동물들의 피를 갈구하게 했으니까.
여자 연구원들은 흉포한 야생동물에게 다가가듯 조심스럽게 토끼풀에게 다가갔다. 토끼풀을 뜯어 한 명씩 맛을 보기 시작했다. 껄끄럽고 텁텁했다. 맛도 향도 이상했다. 무공해 채소코너에서 파는 채소들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러나 뭐, 이런 게 생식 체험이겠거니… 나는 이색체험으로 가득 차 있던 기네스북을 떠올렸다.
“쇠고기 파티는 여러분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찌꺼기 모음을 감춘 것에 불과하죠.”
생식 가이드는 계속해서 육식과 화식으로 오염된 참가자들의 혀와 입을 탓했다. 참가자들은 풀을 맛있는 듯 냠냠거렸다. 하지만 모두 밥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밥을 먹을 시간이었다. 세상에 어느 밥보다 맛있을 밥.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봉밥 한 그릇 말이다. 오후 시간이 한참 지나고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밥 이야기는 조금도 없었다.
“저, 우리 언제 밥 먹습니까?”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세상에 어떤 말보다 아름다운 그 말, 우리 언제 밥? 이었다. 가이드는 기대에 차 바라보는 전체의 눈빛을 보면서 심드렁하게 한마디했다.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았습니까? 풀 말이에요.”
그는 이상한 눈으로 연구원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걸었다. 초원은 넓고 먹을 것은 많았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배, 가, 고, 팠, 다. 저쪽 산기슭에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참가자들은 좀 더 맹렬하게 풀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넒은 들판에 풀어놓은 소처럼. 참가자들은 손으로 제가 먹을 풀에 울타리를 쳤다. 자신의 밥상을 넘보지 못하게. 캠프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생식 가이드가 외쳤다.
“자, 여러분들이 온 방향으로 내려가십시오. 저쪽 길로는 가지 마세요. 내일 올 분들이 식사할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