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소식지에서 맡은 일은 인터뷰였다. 누구를 인터뷰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중.
“아, 예….”
“커피, 맛있게 마셨습니다.”
윽, 커피를 쏟은 일 때문에 첫날부터 찍혔군. 칠칠맞은 여자라고.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수십 톤의 차가운 바닷물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스타일 완전 구기게 됐잖아… 제기랄.
사실, 연구소에서 내가 스타일걸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완벽한 변신은 몇 번의 이별 경험이 가져다 준 학습 효과였다. 남자들은 어려 보이니 순진해 보이니 하며 청순한 여자를 찾는다. 하지만 정작은 앙큼하고 감흥을 낼 만한 암고양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한참이나 뒤의 일이었다.
이별 후에도 남자친구는 자기 존재가 얼마나 나에게 중요한 존재였나를 각인시켰다. 그것도 매달. 선물한 옥돌매트 카드할부금이 날아올 때 그래, 나쁜 새끼, 차라리 색색가지 콘돔, 우둘투둘한 콘돔, 특수 자기발정 젤이 묻어 있는 콘돔을 사줬어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 이두나, 너의 서글서글하고 털털한 성격이 좋아. 난 내숭 떠는 여자애들, 콧소리 내며 여자임을 내세우는 여자애들 딱 질색이거든” 하다가 어느 순간 보면 냉큼 이별을 고하곤 했다. 내가 젖꼭지가 세 개라든가 특별한 성적인 취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모두 다 암고양이들한테 가선 갖은 아양을 떨고 있다.
사람과의 인연은 공적인 어떤 것보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에 의해 좌우된다. 혹은 사소한 실수나 오해에 의해서. 팬티 고무줄이 가려워 긁어대거나 머리를 벅벅 긁고 손끝을 콧끝에 갖다 대 냄새를 맡는 것 따위 말이다. 이 사소한 것들이 때론 한 개인의 본질로 치부된다. 그 사소한 것을 보곤 남자애들은 나를 떠났다. 어쩌면 사소한 실수가, 사소한 오해가, 사소한 배려가 저 위대한 인류 역사를 만들어온 실체인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소장은 커피를 남자 양복에 쏟고 또 자신의 브라우스에까지 튀기는 칠칠맞은 여자로 나를 생각할 게 뻔했다.
팬티 고무줄 쪽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소장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번쩍하고 떠오른 형광등처럼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다음 주 토욜 전기광학학회 Q대학에서 발표하지 않나요? 이두나 씨? 이름을 본 것 같은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소장은 환한 얼굴로 콧날을 찡긋하고는 가버렸다. 포이즌 향. 뭔가 예감의 자취가 배어있었다.
나는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보며 서 있었다. 그리곤 팬티 고무줄이 파고든 허릿살을 긁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