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하긴, 결혼정보 업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들에게서.
대학원을 나온 남자는 대학 나온 남자보다 점수가 5점이나 더 플러스가 된다. 하지만 여자는 그 반대란다. 많이 배운 여자일수록 뭐든 가르치려 든다나 어쩐다나. 그나마 나는 석사에서 딱 내 학력의 수준을 멈춘 것이 다행이면 다행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베이비붐 세대이셨던 교육열 높은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다. 어학연수, 배낭여행, 해외유학 글로벌 경험까지… 물론 이 모두를 한 것은 아니지만… 쩝. 그런 분위기 속에서 글로벌 마인드, 도시적 라이프스타일을 익혔다. 그리고 한국의 대참사,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도 살아남은 위대한 몸이시다.
키는 1미터 65센티에 몸무게는… 음, 밝힐 수 없다.
대학 때는 늘 줄곧 같이 다니는 남자애들이 있었다. 남자애들과 같이 밥 먹고 남자애들과 같이 도서관을 다녔다. 같이 다닌 ‘남자’가 아니라 ‘남자들’이란 데 물론 문제가 있긴 했다. 하지만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는군, 내심 쾌재를 부르던 시절이었다.
전공은 전기학.
여자가 무슨 전기학이냐, 라고 비웃으면 나는 할 말이 많다. 공대녀에 대한 비꼼은 언제나 있어 왔다. 심지어 내가 전기학과에 다닐 때 타과 학생들은 나를 남학생인줄 착각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는 짧은 더벅머리인데다 남자 한복 비슷한 것을 입고 다녔다. 당시 유행하던 개량한복이었다. 남자애들은 나를 늠름하게 잘 자란 여자애로 생각했다.
학과 엠티를 갔을 때도 한방에서 잤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 누가 실수로 내 가슴이라도 한번 만졌으면 내 발가락이나 맹장 정도는 반응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아무도 만지지 않았다.)
졸업을 하고 동창을 만나 한참 수다를 떨며, 우리 과에 걔, 있잖아. 걔 시집갔다더라. 뭐, 이렇게라도 말을 하면, 뭐? 우리 과에 너 말고 또 여학생이 있었냐? 이럴 정도였다. 사실 전기학과에 나 말고 여학생은 3명이나 더 있었다.
그러나 공대 여학생 우습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 공대 여학생 화장실에 쓰여 있는 그들의 투지 혼을 보면 알 수 있다.
완전 공대생-공대의 쓴맛을 보여주마. 인두기 갖고 와.
건축과 여학우-확 그냥 공구리 쳐버릴까 보다.
전기 여걸-공대 놀리냐? 직류 16만 볼트 먹여버린다
기계과 여전사-괜히 열 받네 프레스 찍어버린다, 그냥~
토목소녀-나 중장비 면허 땄다. 시동 걸구 있음. 기둘려~
그중에서도 전기는 매력적인 생명이 깃들어 있다. 오래전 지구에 현생 인류의 초기 선조들이 번개를 경험한 이후 전기는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지구에 살아 있는 생명체다. 조그만 철조각 주위에 도선을 감아 코일을 만들어보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 도선에 전기를 연결하면 신비로운 전류가 도선 안으로 흘러들어간다. 평범한 철조각이 갑자기 살아난 것이다. 철조각은 강력한 자석으로 변한다. 주위 다른 철들을 끌어당긴다. 생명으로 살아난 철은 다른 철을 생명으로 불러들인다.
나는 어릴 때 침 뱉기 시합과 연필 뺏기 시합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었다. 동네 연필은 모두 내 차지였다. 엄마 아빠는 어린 나에게 어느 날 자석과 전극을 선물했다. 철조각을 잡아당기는 마력. 정전기가 일어나는 작은 불꽃. 이 불꽃들은 1온스(약 28.3그램)의 백만 분의 1보다 가벼운 전자에서 만들어진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작고 훨씬 빠른, 이 작은 물체의 아름다운 힘을 사랑했다.
나는 신비로운 전기소녀가 되고 말았다. 눈에서 파란 불꽃이 튀어나올 것 같은… 폭풍우 몰아치던 어느 날 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전기를 사용했던 것처럼… 전기의 놀라운 생명력을 얻기를 원했다.
해서 어릴 때 꿈은 당연히 과학자가 아니었다. 내 꿈은 프랑켄슈타인이 되는 것, 프랑켄슈타인이 되어 전기 불꽃을 내며 신비로운 전력을 뿜어내는 것, 딸각 스위치를 넣으면 세상의 모든 철조각을 끌어당기는, 그것이 완두콩이든 위험한 욕망이든 불가사의한 행성이든 끌어당기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할 때까지 어느 놈도 내게 끌려오지 않았다. 끌려오는 듯하더니 나보다 더 강력한 자석에 슉 끌려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