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밥을 먹기 전과 먹은 후 인간은 얼마나 놀랍게 변신하는가. 화장실 가기 전, 밥을 먹기 전, 미친다. 미쳐 날뛴다. 그러나 볼일을 마치고 나면 금세 의기소침해진다. 조금 전까지 광포하게 굴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소심하고 체면 가득한 자로 돌아온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형두는 나와 살기 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듯 정성을 다했다. 얼마나 우리 집을 들락날락거렸는지 우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알 정도였다. 설거지는 당연히 도맡아 했다. 설거지가 끝나면 아버지와 바둑을 두었다. 아버지의 선심을 사기 위해 기원까지 가서 배운 바둑이었다. 크리스마스나 휴일을 늘 우리 식구들과 함께 보냈다. 그래서 형두의 부모는 자신들이 아들을 낳았는지 안 낳았는지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형두의 따뜻한 눈빛에 나는 세계가 거대한 긍정으로 이루어진 풍선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함은 세상을 긍정하게 하니까. 미래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탐욕스런 상상에 불과했다. 한집에 살고부터 형두의 모든 심술궂은 결함들이 나타났다. 상상이란 순진한 자의 덫 같은 것이다.
형두가 변한 건 청개구리 탓일지도 모른다. 몸속에 청개구리가 살고 있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게 틀림없다. 볼일을 마친 청개구리가 금세 의기소침해지면 녀석은 몸속으로 숨어버리고 인간이 다시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본다면 미쳐 날뛰는 것은 몸속에 있던 청개구리이고 체면을 차리고 있는 것은 인간이니 굳이 변심을 했다는 둥 하며 놀랄 필요도 없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환장하던 청개구리에서 체면을 차리는 인간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너무했다. 밤중에 비디오 반납하고 오라니. 비디오 좀 연체됐다고 숫제 맛탱이 간 식은 밥 취급이다.
“이 밤중에 어딜 나가라는 거야….” 볼멘 목소리의 이두나, “너 정말….” 형두가 다시 벌겋게 달아올라 도끼로 방문을 내려찍으려 했다. 하는 수 없이 “알았어. 알았다고.” 대꾸하고 말았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다.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 저녁 6시. 콩나물국을 끓여달라고 하기엔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 다시 오한이 일었다.
현관 조명등 센서가 딸깍 하고 켜졌다. 형두가 아직 안 들어온 건가? 거실은 불이 꺼진 채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소파가 잠자는 고래처럼 웅크리고 있다. 보통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베란다 쪽 창문에는 이미 어둠이 한가득 내려와 있다. 해는 서둘러 제 집으로 숨어버린 듯했다. 벌써 가을인가.
현관 앞에서 신발을 벗으려다 보았다. 신발이 두 개다. 순간 신경이 곤두선다.
그때 현관 센서 등이 딸깍 하고 꺼졌다. 나는 급하게 다시 몸을 일으켜 위로 손을 흔들어 센서 등을 켰다. 센서 등이 들어왔다. 분명했다. 신발이 두 개. 남자 신발 한 켤레와 여자 구두 한 켤레. 형두의 운동화와 에나멜 여자 구두였다.
나는 숨을 죽였다. 살금살금 신발을 벗는다. 발꿈치를 들고 거실 쪽을 향해 걷다 멈춘다. 안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살을 부비는 소리 같기도 하다. 현장을 덮치는 사람답게 나는 심호흡을 했다. 몸을 숙이고 안방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간다.
신음소리가 갑자기 멈춘다. 안방이 조용해진다. 밖의 기척을 눈치 챈 걸까. 두 남녀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옷을 잽싸게 입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방문을 열어보고 비명을 지르며 겁에 질릴지도 모른다. 부엌으로 가 식칼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나는 예의 있고 품위 있는 여자다.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한다. 그런 다음,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문 틈새로 조용히 속삭이듯 말한다.
“나… 왔어….” “으응… 왔어?” 기다렸다는 듯 형두가 응대한다. 누군가와 이불을 덮고 침대 위에 누워서. 형두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겨우 넘긴 가래침 소리같이 부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