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누구나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짬뽕을 먹을지 자장면을 먹을지. 섹스를 할지 술을 마실지. 사실 모든 선택은 권력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릴 때 엄마와 아빠는 내 손을 양쪽에서 잡고 나를 보며 물었다.
“모텔에 갈 거야, 말 거야?”
대학 때 남자애는 다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난 듯 내 손을 끌며 묻곤 했다.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짧고 잔인한 혼란이다. 어린 나는 웃고 있는 엄마 아빠를 번갈아 올려다본다. 남자친구의 더운 입김을 귓불로 느끼며 그를 쳐다본다. 그러곤, 침묵의 카드를 선택하고 만다.
선택의 강요, 생이 나를 데리고 숨바꼭질을 했다. 가끔 장난을 쳐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선택의 순간. 태양이 두개골을 뜨겁게 굽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짓고 만다. 경험의 법칙에 의하면 미소는 비밀을 들키지 않는 효과적인 미봉책이다.
삶이 나를 놀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임연구원들이 비정규 연구원과 수습사원, 인턴 들을 모아놓고 하는 세미나 시간이었다. 열띤 토론과 논박이 불꽃 튀게 일어날 만한 곳이었다.
“우주방사선, 우주선은 태양보다 더 멀리 떨어진 별에서 옵니다. 수천 년 동안 여행을 하면서 힘이 모두 소진되어 일부는 지구의 천장 속으로 흡수됩니다. 나머지 우주선들은 빠르게 움직여 사람 눈의 수정체 세포와 부딪칩니다. 이때 인체 더 깊숙이 들어 있는 DNA 분자와 부딪치면 돌연변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구선은 눈을 반짝이며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누가 봐도 딱 부러지는 말투다. 외국박사를 전임연구원으로 영입해야 한다는 것은 연구소 기획과의 혁신적 제안이었다.
이어지는 이대팔의 말,
“우주방사선은 지구의 자기장 때문에 잠시 주춤할 수 있어요. 자기장은 보이지 않지만 집 위의 둥근 돔처럼 지구 주변에 펼쳐져 있죠. 다 아시다시피 지구가 그래서 우주로부터 보호되는 것입니다.”
말을 잇는 이구선,
“예, 맞습니다. 이형필 과장님 말씀대로….”
이대팔의 본명은 이형필이다. 이구선은 이대팔에게 싱긋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어가려 했다. 이때 이구선의 말을 끊은 것은 손진영 연구2과 과장이었다.
“그러나 자기력이라는 방패가 약해지면 DNA는 공격을 받을 수 있죠. 손상된 DNA가 복구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과제일 것 같은데….”
손진영 과장은 늘 시대 윤리에 대해 고민하는 운동권 과학도다.
이구선의 양미간과 입술이 약간 구겨진다.
“그런 일은 수십만 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하는 일입니다.” 이구선은 이대팔 넘버 투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그럼요. 이번 녹색 에너지 성장 프로젝트에서 이형필 과장님이 신경 쓰고 있는 부분도 바로 그런 부분이죠. 얼마나 애를 쓰고 계시는데요.” 안전하게 리시브 받는 맹아부, 이대팔의 넘버 쓰리임을 과시했다. 맹아부는 이대팔을 보며 헤헤거렸다. 그들은 우주의 행성처럼 중력으로 팽팽하게 서로를 끌어당겼다.
‘어휴ㅡ 저 인간.’
갑자기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생리날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