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불시에 땅에 깔린 청년이 가슴팍을 밀었다. 거칠게 부닥친 둘은 치고 당기며 불길 속으로 뒹굴었다. 뜨거움이 승을 미치게 했다. 청년의 목을 잡고 흡혈귀처럼 빨았다.
“말해봐, 여자가 정말 느껴져?”
너무 놀란 청년이 엄청난 힘으로 반항하자, 무릎으로 정강이를 눌렀다.
“접신하듯 욕망을 채우는 거지? 영혼을 어떻게 움직여? 살아 있는 영혼은 실에 매달린 연처럼 몸에 붙어서 떠날 수 없어!”
독거미처럼 기어올라 입술을 비볐다. 혀를 들이밀며 손아귀로는 죽일 듯 청년의 목을 조였다.
‘당신은 잔인해요!’라고 울던 아내와 유리가 생각났다. 자신의 피가 다르다는 걸 깨달은 사춘기 이후로 승이 잔인하게 대하지 않은 사람이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잡아먹힐 것 같았고, 금세 터질 둑을 등에 진 두려움에 늘 질려 있었다.
불덩이가 얼굴로 튀었다. 승은 날뛰는 청년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약국의 카운터 뒤에 숨어서 바이 성향도 숨기고 안정된 수입도 얻기 위해 약대로 진학했던 승은, 여자와 남자들 사이에서 제법 균형을 잡았었다. 그러나 한여름 밤 길거리에서 아버지를 본 뒤, 균형은 뒤집히고 갈등은 해법도 없이 얼어붙었다. 갈 바를 잃은 승은 양성에 먹히지 않으려고 자멸적인 에너지로 여자들을 탐한 뒤 가차없이 버렸다. 그런 그와 잠자리를 한 여자들은 매번 죽음이라 여기는 그의 섹스에 열광해 그를 잊지 못했다.
청년의 손가락이 뒷목을 눌렀다. 팔로 꺾어버리고 청년의 다리 사이를 더듬었다.
“뭔 짓이야, 놔!”
새파랗게 질린 청년이 걷어찼다. 승은 하이에나처럼 다붙어서 면바지 위로 청년의 뿌리를 움켜쥐었다. 동공이 튀어나올 듯 놀란 청년을 바라보며 손아귀에 힘을 줬다.
잔인하게 대하지 않은 인간이란 없지만, 온전히 사랑한 인간도 없었다. 바닥 없는 생을 사는 자신 이외의 인간이란, 돌멩이나 자동차처럼 사물에 지나지 않았다. 청년의 주먹이 날아왔다. 등에서 불덩이가 바스러졌다. 코피를 뿌리며 승은 격렬하게 청년의 뿌리를 잡고 흔들었다. 지옥에 떨어져도 좋으니까 사랑하고 싶어. 뺨에 닿는 청년의 입술 거스러미가 욕망에 기름을 부었다.
“다 먹히고 뼈만 남아도 좋아. 어떤 종류에 속하지 못해도 널 갖겠어. 너무 오래 참았어!”
손을 뻗어 청년의 바지를 벗기자, 청년이 턱을 쳤다. 눈앞이 번쩍였다. 저도 모르게 뺨을 갈기는데 깃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마어마하게 큰 몸집을 날려서, 닭이 칼날 같은 부리로 승의 팔을 찍었다.
“그 여자에게 보낸 교신이 닭에게 잘못 갔나? 여자 대신에 닭이 찾아왔던 거야?”
닭이 어깨를 타고 올라, 정신이 나간 듯 발버둥치는 청년을 대신해 맹렬히 공격했다. 불을 던지고 주먹을 휘둘러도 악착같았다.
“기억상실증인 여자나 닭대가리나! 그렇지, 주화입마가 가능한 두 번째 자아일 수도 있겠군. 지저분하게 미친 거지.”
청년의 다리를 끌어안자 목덜미를 부풀린 닭이 그르렁거렸다.
“처음 닭을 안았을 때, 떨고 있었겠지. 짐승들은 다 가늘게 떨거든. 그 여자 생각이 났겠지?”
표창 같은 발톱을 세워 내리꽂히며 닭이 승의 뺨을 할퀴었다.
“그녀가 오면, 아니 벌써 죽었겠지만 혼이라도 온다면, 닭을 선물하면 어울리겠군. 닭과 여자를 거느리고, 넌 행복하겠지?”
머릿속의 폭풍이 가라앉지 않아 미칠 것 같았다. 이 청년만 건들지 않고 무사히 이겨내면 평화가 올 거라고, 비등점까지 참아왔던 욕구가 그를 찢어발겼다.
“이거 놔! 놓으라구요!”
낯설게 변한 목소리로 청년이 울부짖었다. 승의 눈앞이 새파래지며 치솟는 기가 발작을 일으켰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승은 불구덩이에 앉아 비명을 질렀다. 날뛰는 닭도, 청년도, 불도 불시에 보이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악. 골이 빠개지도록 소리치며 휘둘러대는 팔을 누군가 힘껏 잡았다. 이번엔 청년이 발광하는 승을 불구덩이에서 거세게 밀어냈다.
“왜 그렇게 힘들어합니까? 양성이면 그렇게 살면 되잖습니까? 가야 할 길이면 가는 겁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널 원해! 난 앞이 캄캄한 길은 안 가! 널 타 넘고 다 극복해 낼 거야!”
허리가 꺾인 승은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청년을 쪽마루로 밀어붙였다.
“한 번만 안아 줘. 잠깐만이라도 사랑하게 해 주면 다신 돌아보지 않겠어! 넌 자아가 나뉘는 게 어떤 지옥인지 절대 몰라!”
승이 밀어붙이자, 닭이 튀어 올라 쇳덩이처럼 승을 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발톱에 채인 승의 앞 셔츠가 찢어지고 가슴팍에 붉게 금이 갔다. 배에서 가슴까지 금세 핏물이 돋더니, 살가죽이 길게 벌어졌다. 다시 허공을 치고 오른 닭을 잡아채 승은 단숨에 목을 비틀어버렸다.
뚜둑. 뼈가 꺾이는 소리에 청년의 눈이 크게 열렸다. 둘은 동시에 휘청거렸다. 몇 번 깃을 젓던 닭이 발을 늘어뜨리더니 불현듯 잠잠해졌다. 대가리를 쥐고 승은 청년을 노려봤다. 거대한 닭은 식어가며 손아귀에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목이 길게 늘어났다. 승의 피가 그 위로 뚝뚝 떨어졌다.
참담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청년에게 닭을 던졌다. 청년이 안아 올려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그런 뒤 표정이 완전히 가신 얼굴로 복화술사처럼 말했다.
“서영이가 힘들어해요. 이리로 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