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믿기 어렵겠죠. 게다가 서식지를 벗어난 저지대였으니까요. 설표에 대해 전설처럼들 얘기하지만, 드물게는 굶주려서 민가의 양을 찾아 내려오기도 합니다. 밀렵꾼들은 원체 설산 끝까지라도 뒤지지만요.”
“정말 설표를 만났다구요? 그것도 다친 설표를?”
“즉사시키지 못해서 밀렵꾼들이 목숨을 걸고 몰아가는 현장을, 인근에서 하산하던 탐사 팀들이 사선 연락을 받고 뒤쫓은 거죠.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숨어버린 설표를 밀렵꾼이 한나절 동안 따라붙은 상황에서요. 합류하는 탐사 팀을 쫓아내려는 밀렵꾼들과 살생을 막으려는 탐사 팀의 싸움이 소리 없이 험악해지던 도중에, 바위틈을 스쳐 가는 설표가 모두의 눈에 아주 잠깐 비쳤답니다.”
승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내밀었다.
“바람처럼 다시 사라진 설표는 해가 질 무렵 바위산 위쪽에서 피투성이로 쓰러졌어요. 가죽을 상하지 않으려고 총을 더 쏘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던 밀렵꾼들이 촬영을 막았고, 치료해서 살려내려는 탐사 팀과 무언의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 그 사정거리 안으로 서영이가 튀어 나간 겁니다.
동생의 눈빛이 강해졌다.
“한순간에 설표에게 달려가 닿았어요. 그때, 숨이 끊어져 가던 설표가 일어섰습니다. 그녀와 눈을 맞추고 잠시 서 있었어요. 그리곤 비틀거리자, 뒤따라간 형과 그녀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불시에 짐승을 상대로 공포에 질린 싸움을 한 겁니다. 결국 형을 포함한 세 명이 가격당했지만 힘이 빠진 상태여서 살아났고, 설표는 사살됐죠.”
“가격당해요? 그림자도 보기 힘든 설표에게? 팔뚝을 그렇게 긁히고도 멀쩡히 살아납니까?”
소름이 돋았다. 승은 물러앉으며 입술을 축였다.
“서영이 잡아먹힌다고 생각했으니까 정신이 나갔겠죠. 팔목이 끊어지거나 죽지 않은 게 기적이죠.”
시간이 가도 붉은색이 가시지 않는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동생이 한동안 망설였다.
“그런데 서영이가 이상했어요. 형이 다쳤는데도 돌아보지 않고, 죽은 설표와 함께 재빨리 현장을 떠난 밀렵꾼을 뒤쫓았답니다. 어린애처럼 설표를 부르며 뛰어갔다는데, 바위산 뒤편에서 허우적거리며 앞뒤 살피지 않고 따라가다가 실족했어요. 머리를 부딪쳐 피를 흘렸지만 다행히 응급 치료를 받고 민간인 차에까지 운송됐는데, 어두워진데다가 실성한 것처럼 뛰어내리려고 발버둥쳐서 경사로에서 도중에 차가 굴렀답니다.”
승은 넋을 놓고 그 모든 광경을 좇았다. 상상조차도 버거워 현기증이 났다.
“크게 다친 이는 없어서 병원에 도착해 모두 치료를 받았고, 서영인 수술을 받은 뒤 입원시켰는데, 거기서 그녀가 사라진 겁니다.”
“다친 채로요? 어디로, 다시 산으로 간 겁니까?”
동생은 한참이나 입을 떼지 못했다.
“현지인들을 사서 뒤졌지만 못 찾았어요. 관계처에 연락하고 도움을 청했지만 종적도 없었죠. 더 나쁜 건… 서영이 기억을 잃고 있었다는 겁니다. 머리를 부딪쳤을 때 상했는지, 살해된 설표를 본 충격에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었는지, 형도 팀원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어요. 병원에선 뇌에 이상이 없다고 했죠. 상처를 봉합하고 충격에서 회복되길 기다리며 병실을 지켰는데, 그런데도 사흘째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보도를 본 적이 없어요. 한국인이 설표에 가격당한 얘기조차 들은 적이 없어!”
동생은 근심과 진정성이 담긴 눈매로 골똘히 승을 봤다.
“다친 설표를 촬영한 카메라는 극단으로 위협하는 밀렵꾼들에 의해 손상됐고, 한순간에 밀렵꾼들은 사라져버렸어요. 설표가 죽고 사람이 다쳤는데도 산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당시 매스컴에 자세히 실리지 못했습니다. 중국과의 정치적 마찰로 온통 어수선한 때이기도 했지만, 설표에 대해선 거의가 그런 식이었죠. 입에서 입으로는 퍼지지만 공식적으로는 부정하거나 적극적인 수사를 못한다구요. 저도 자료를 샅샅이 뒤졌는데, 부풀리고 허무맹랑한 기사들만 흩어져 있더군요. 그래도 부상자가 실종된 상태여서 수사는 계속됐습니다. 여러 곳에서 도와줬지만 찾지 못했어요.”
잠긴 목소리였다.
“보도진과 기관에 드나들던 형은 절망을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승의 목도 침을 못 삼키게 말라왔다.
“힘든 시간을 보낸 뒤, 형은 사람을 고용해 직접 찾겠다고 결심했죠.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거나 끌려갔다는 등 끔찍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형은 그걸 원치 않았어요. 모든 얘기는 서영을 찾은 뒤에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 지역에 한국 사람이 적었고, 다친 상태의 외국인이니까 곧 찾을 거라고 확신했죠.”
동생은 풀밭에서 웃고 있는 소녀의 사진을 물끄러미 봤다.
“…병원에서요, 서영이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자꾸 시트를 안고 어루만졌다더군요. 슬픔과 애원을 담아 위로하고 계속 쓸어주면서요. 그녀의 기억은 피를 뿜으며 죽어가는 설표에서 멈춰버린 겁니다.”
승의 내부에선 묘하게도 겨울이 펼쳐지고 있었다. 눈과 흙이 뒤섞인 거뭇거뭇한 초원이 한 마리 설표 같고 설표가 초원인 듯, 두 개의 이미지가 물살처럼 흘렀다.
“사 년이나 됐는데 지금도 어디선가 유랑하고 있다는 게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