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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맞춘 듯 닭이 길고 아득하게 울었다. 야밤에 뭔 놈의 닭소리냐. 승은 갑자기 입이 타서 아파트를 나가 어두운 골목을 서성거렸다. 청년의 집에 또 가보고 싶었지만 밤중에 곧바로 쫓겨나면 내일 만나기가 더 힘들 거란 걱정이 그를 막았다. 누구에게도 배려라던가 염려로 주저해보지 않던 승으로서는 이 조심스러움이 갑갑했다.
부실한 가로등 빛에 길바닥만 가늠되는 좁아터진 골목이었다. 어둠이 얼마나 질긴지 마주 오는 이를 갑작스럽게 토해내어 서로 경계하고 노려보게 만들었다. 다시 닭이 울었다. 마무리에 꾸르륵거리는 소리까지 들린 성 싶게 선명했다. 승은 불현듯 악을 쓰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악을 쓰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을 쓰고 싶었다.
석 달간의 촬영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때부터 쌓였던 피로가 그렇잖아도 출구를 찾아 치닫던 참이었다. 전시회와 사진집 출간 준비로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관계자들과의 실랑이와 간단없이 날아오는 아내의 기척으로 날카로워진 신경이, 어쩐 일인지 지금 불씨를 본 기름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이 돌발적이고 거의 몽환적인 흥분상태가 승은 불안했다. 미세한 떨림을 동반한 이상스런 흥분은 그의 육체 속에 잠들어 있던 눈 하나가 타깃을 발견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불길한 징조였다.
축대에 등을 기댔다. 청년의 미소가 승의 안구 속까지 환하게 밝혀왔다. 일이 초의 짧은 것이었지만 곁에 섰던 여자가 더 놀라서 어이구, 웬일로 쟤가 다 웃네, 하며 방문이 닫힌 후까지 떠나지 못하다가, ‘우리 애가 간만에 웃는 거예요, 고맙네요.’ 하며 승의 손을 토닥거리게 만들었던 미소였다.
승은 긴장을 풀려고 허공에 잽을 몇 번 날린 뒤, 잠이나 자자고 아파트로 돌아갔다. 거실을 지나며 티브이의 볼륨을 줄이자, 연두가 드라마에 눈을 준 채 다시 볼륨을 올렸다. 승은 줄을 잡고 전원을 빼버렸다.
“시끄러우면 딴 데 가지 왜 일루 왔어?”
“꺼 놔. 며칠만 쉰다니까.”
“싫어. 간섭하는 인간 나도 귀찮아.”
그러면서도 연두는 사과접시를 들고 일어섰다.
“올케언니가 전화 했더라,”
“연락 못하게 하랬잖아.”
“약국 처분한 돈 벌써 다 썼어? 작업실 따로 있던 거도 없앴다며? 언니가 다 알고서 오빠 어떻게 지내냐고 묻더라구.”
“이런 썅!”
승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왜 화를 내? 2년이나 지났는데 언니는 오빠가 왜 가출했는지, 왜 약국을 팔아버리고 사진만 찍는지, 여태 모르겠대.”
그 머리로 뭘 알겠냐. 승은 찡그리고서 냉장고 앞에서 단숨에 콜라 한 캔을 마셨다.
방으로 가서 골라뒀던 흑백사진 두 장을 집어 들었다. 연재 중인 전자회사 사보에 쓰려고 며칠 전에 강원도에서 찍어왔던 정선 어름의 촌로였다. 제대로 된 옥색 한복에 검은 탕건을 쓴 모습이 멀리서부터 눈길을 끌길래 망원 렌즈로 잡았다가 성에 차지 않아서 삼만 원의 술값을 주고 근접 촬영한 사진이었다. 동네노인들의 부추김으로 술값을 받고 찍히긴 하지만 술값은 개뿔, 어른 앉혀놓고 젊은 놈이 코앞에서 알짱거리며 뭐 하는 짓이냐고 렌즈를 꼬나보던 꼬부장한 얼굴.
승은 노인의 눈알을 들여다보다가 자꾸 어른대는 몇 개의 환영을 피하려고 생각을 닭으로 몰아갔다. 웬만한 개보다도 큰 녀석을 내일 기어코 밀착 촬영할 작정이었다. 인공적인 티가 역력한 털빛을 찍어봤자 색칠한 도자기처럼 조잡하게 나올 게 뻔했지만, 승은 더 이상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닭이 주던 묘한 분위기. 왜 하필 두려움이었는지 모르지만 낯설 정도로 컸다는 경이감 외에도 어슴푸레한 두려움을 풍기던 녀석이었다.
사진을 놓고 반듯이 누웠다.
천장에 닭과 청년과 흰 짐승이 차례로 걸렸다. 청년도 미끈하게 키가 컸지만, 닭과 괴수도 청년을 능가하며 시야 안에서 점점 커졌다. 몇몇 동화 같은 얘기와 몇몇 상상 속의 동물들이 부침했다. 와중에 머리맡에 던져둔 촌로까지 그 틈을 비집고 천장에 올라붙자 승은 돌연 씨익 웃었다.
두려움이란 게 별 게 아니었다. 닭도 괴수도 사람의 표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왜 얼른 깨닫지 못했을까. 포클레인에 잔인하게 찍힌 산이나 백주에 내장을 드러낸 폐가, 힘줄처럼 빨갛게 부푼 초봄의 가지에서 상처처럼 움트는 새싹을 발견하고 아찔해지던 순간의 나무들은 비애에 떠는 인간의 표정 그대로였다. 바로 그거였다. 도시에서 그의 어깨를 치고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적나라한 인간의 표정이 닭에게 붙어 있었던 것이다.
승은 노트북에 이어폰을 꽂고 매시브 어택을 골랐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자 빙그레 웃었다. 이제 잠이 올 듯했다. 나른하게 팔을 베며 내일 할 일들을 단조롭게 생각했다. 한 번 생각하고 별 의미 없이 다시 생각하다가 순서가 얽히며 충돌한 생각들이 그러나 재잘대는 새떼처럼 결국 그를 깨워냈다.
볼륨을 높이고 반복음들을 들었다. 틱택틱토우 틱택틱토우틱택택토우. 분절음이 끝나고 싱어의 음성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승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기를 쓰고 말아뒀던 자신의 더듬이에 날카롭고 위험한 게 덜컥 걸렸다는 느낌이었다. 뿌리째 뽑아내지 않으면 다음 일로 결코 넘어가지 못할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곡을 바꾼 승은 눈을 비볐다. 심장이 떨리면서 목이 흔들릴 정도로 격한 감정이 치밀었다. 가슴을 쥐고 침착해지려고 두어 번 침을 삼켰다.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상상도 못할 수작이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일어나 불을 켠 승은, 다시 요 위에 누우며 주먹으로 눈을 훔쳤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눈물을 훔쳤고, 눈앞이 부옇도록 울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새벽이 오도록 뒤척이던 승은 히말라야 습지에서 구해왔던 수면용 풀즙을 주사기에 덜어서 오랜만에 팔뚝에 찔렀다. 나른한 트립합 두 곡을 다 듣기 전에 쏟아지는 잠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