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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소리를 죽이고 가서 틈새를 엿봤다. 어두웠다. 문을 좀 당기고 들여다보던 승은 언뜻 놀라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방안을 살폈다. 바람벽 아래 시커먼 덩어리가 길게 놓여 있었다.
“…”
자세히 보니 벽을 따라 엎드린 남자 같았다. 그런데 자세가 이상했다. 바닥에 배를 찰싹 붙이고 고개만 기이할 정도로 높이 치켜들고 있었는데,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을뿐더러 갓 새어 들어간 빛줄기에 드러난 반쯤 감긴 눈이 전혀 깜박이지 않았다. 눈을 뜬 채 자는 사람은 봤지만 저렇듯 박제처럼 굳어버린 포즈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방안은 수족관에서 뿜어진 푸르스름한 빛에 물들어 있고, 사방 벽에는 식별이 불가능한 그림들이 천장까지 뒤엉켜 마치 침침한 동굴 속 같았다.
“누구요?”
갑작스런 소리에 돌아보니 나이 든 여자가 마당을 질러오고 있었다.
“남의 집에서 뭐해요?”
그가 대꾸를 못하고 머뭇거리자 외출복 차림의 여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저기, … 닭이 울어서요.”
순발력이 요구될 때마다 백퍼센트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박자를 놓치는 게 용기전법의 맹점이었지만, 승은 곧 애매하게 웃었다.
“닭요? 닭 땜에 왔어요?”
뜻밖에 여자의 표정이 수월히 풀렸다. 이런 땐 설명 따윈 접고 싹싹하게 밀어붙이는 게 최고였다. 그는 한껏 순하게 눈웃음쳤다.
“얘, 얘, 자니?”
여자가 방에다 대고 낮게 부르더니 “또 자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막막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달구새낀 어디 갔지? 닭 못 봤어요?”
여자가 높은 목소리로 구구구, 외쳤다. 그러자 뜻밖에도 기척 하나 없던 뒤꼍에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푸드득 나타나서 순식간에 그를 향해 날아왔다. 검은 보자기처럼 바람을 타고 온 느낌이었다. 땅에 뛰어내려 뒤룩거리는 눈알로 할끔할끔 쳐다보며 바짓가랑이 앞뒤로 맴도는 녀석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던 승은 웃음을 터뜨렸다.
녀석의 스타일은 일테면 펑키 룩이었다. 여느 수탉처럼 반쯤은 솟고 반쯤은 기울어 흔들리는 볏은 예사로운 빨간색이었지만, 목을 감고 흘러내린 무성한 깃털, 화가 나거나 흥분하면 노예선의 일사불란한 노 떼처럼 우우 곤두설 목의 깃털들은 번쩍이는 황금색이었고 그 색을 돋보이게 하면서 몸뚱이 전체가 푸르딩딩한 녹색이었다.
“이거 닭 맞아요?”
승은 입을 쩍 벌렸다. 이상야릇한 색깔의 닭은 덩치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특이함을 지나쳐 장중했다.
“그럼 뭐 같수?”
“봉황인가 했죠.”
농담대로 정말 살진 봉황만 했다. 꼬리는 더 가관이어서 열대밀림의 거대한 풀잎처럼 출렁거릴뿐더러 몹시 반짝였다. 승의 손이 또 옆구리를 뒤졌고, 카메라가 잡히지 않자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닭이 튀어나왔을 때보다 더 놀랐다.
스물 후반쯤 됐을까? 키 큰 청년이 어둑한 방안에서 그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조금 전 벽 아래 엎드렸던 남자였다.
“깨었니?”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마루 끝에 붙어 섰다. 푸른 색 반팔 티를 입은 청년이 문을 열고 쪽마루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수그렸던 고개를 든 순간, 승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직 점심 안 했지?”
여자가 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얼결에 뒤로 물러서 있던 승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청년을 뜯어보았다. 그토록 수려하게 생긴 남자를 눈앞에 본 적이 없을뿐더러 그토록 불꽃을 압축해놓은 것 같은 눈동자도 처음이었다.
“어이구, 이 바보는 닭밖에 몰라.”
닭이 뛰어올라 청년의 품에 안기자, 여자가 얼굴 가득 웃으며 손가방에서 약봉지를 꺼냈다. 두툼한 봉지를 받아들고 방으로 돌아가려는 청년을 다독이다가 청년이 몸을 틀자 여자의 손이 맥없이 떨어져버린 순간, 청년과 승의 눈이 마주쳤다. 승은 한기에 쏘인 듯 몸을 떨었다. 닿는 것마다 태워버릴 듯 강렬한 눈빛인데도 무위스럽기 짝이 없는 몸짓. 그 몸짓을 조용히 돌려세우는 모양 좋은 맨발 위로 청년의 육체는 절정의 여름나무처럼 미끈했다.
그러나 다음 걸음을 떼며 청년이 방 쪽으로 돌아섰을 때, 막 드러난 청년의 팔뚝 뒤쪽, 어깨로부터 한 뼘쯤 아래에 벌겋게 이지러진 살이 보였다. 그 활짝 핀 붉은 꽃 모양의 흉터자국을 향해 승의 시선이 작살처럼 날아가 꽂혔다.